[시가 있는 휴일] 보리수

입력 2023-03-02 18:10 수정 2023-03-03 04:24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에서 꿈꾸었네
그토록 많은 단꿈을.

나는 그 껍질에 새겼네
그토록 많은 사랑의 말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 언제나 그리로 갔네.

나 오늘도 깊은 밤에
그곳을 지나가야 했네.
거기서 어두운데도 나는
눈을 감았네.

가지들 속삭였네
마치 나를 부르는 듯,
친구야 내게로 와
여기서 너는 안식을 찾으리!

차가운 바람 불어왔네
곧바로 내 얼굴로,
모자가 머리에서 날아갔지만
나는 몸 돌리지 않았네.

이제 나는 오랜 시간
그곳에서 떠나 있네,
언제나 속삭이는 소리 들리네
너 그곳에서 안식 찾으리!

-독일 대표시 선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중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 빌헬름 뮐러는 이 시를 포함해 모두 24편으로 구성된 연작시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썼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방랑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슈베르트가 이 연작시들에 곡을 붙여 ‘겨울 여행’이라는 연가곡을 만들었고, 우리말로는 ‘겨울 나그네’로 번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