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한림원은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선정했다. 그가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자전적 소설이다. 노벨상 발표가 난 직후 나는 책장에 가서 그 책을 다시 찾아 펼쳐 보았다. 시작부터 난생처음 텔레비전에서 본 포르노 영화 이야기를 언급하던 작가는 두 페이지 뒤에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고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1974년부터 소설을 발표해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이자 문학 교수로 자리 잡은 이 소설가는 왜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은 걸까. 그리고 한림원은 왜 이런 파격적 소재를 택한 작가에게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원)와 함께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안긴 것일까.
글쓰기 강연이나 책쓰기 워크숍에 온 학인들에게서 자주 마주치는 감정은 ‘두려움’과 ‘망설임’이다. 여태까지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덜컥 그걸 쓰자니 주변 사람의 반응이 걱정되고, 안 쓰자니 새삼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아유, 그냥 쓰세요. 세상 사람들 의외로 남 이야기에 관심 없어요”라고 북돋아 준다. 출판기획자이자 나와 같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아내는 한술 더 뜬다. “남편은 초혼이고 저는 재혼인 거 가족들한테도 얘기 안 했다가 남편 첫 책에서 처음 밝혔는데, 지금까지 그거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 하나도 없었어요. 일단 쓰시고 정 힘들면 퇴고할 때 빼면 돼요. 근데 쓰고 나면 빼고 싶지 않을걸요?”
‘이런 얘기를 내가 쓰면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시댁 식구들과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쓰면 시동생이 가만히 있을까, 잊었던 걸 왜 새삼 들춰내냐고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으로 시름의 밤은 깊어간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적으로 모르는 게 하나 있으니 모든 글은 쓰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글을 쓰는 작가조차도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알지 못한 채 쓴다. 그러니까 글쓰기 전에 “나 이런 거 써도 될까?”하고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대부분은 쓰지 말라는 말부터 할 테니까. 하지만 막상 글이나 책으로 완성되고 나면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그게 글의 힘이라는 걸 매번 느낀다. 그러니까 결국 이야기를 못 쓰게 하는 건 타인의 반대가 아니라 지레 겁부터 먹는 자신의 약한 마음인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씀으로써 나쁜 기억이나 고통에서 해방됨은 물론 작가로서 우뚝 서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가들만 해도 멀리는 박경리나 박완서 선생부터 가깝게는 박상영, 정세랑 작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경험했던 사건이나 만난 사람들을 글에 등장시킴으로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바 있고 심지어 개인적인 정신과 상담기록을 책으로 엮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도 있다.
주변에 계신 노인들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가 ‘내가 살아온 얘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거야’라는 귀여운 호언장담이다. 그런데 왜 그분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까.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울한 이야기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든 일단 써야 다른 이에게 전달이 되는데 망설이느라 또는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국내 인터넷서점 외국소설 담당MD는 “에르노는 가장 개인적인 체험을 소재로, 날것 그대로의 생의 감각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 짙은 해방감을 선사하는 작가다. 이번 기회에 에르노의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에르노가 선사하는 짙은 해방감은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고 싶은 글쓰기의 효용일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무엇이든 말로 바꿔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됐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나는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라는 대목에 주목해 본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처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