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나 인사만큼 말 많고 탈 많은 게 없다. 주요 공직자 임명을 놓고는 전 국민이 한마디씩들 한다. “하필 왜 저런 사람을 골랐느냐”고 누구나 쉽게 비판하지만, 인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앉히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이 하루 만에 취소됐다. 명백한 인사 검증 실패였다. 검증하는 자리에 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을 몰랐다고 했다. 언론 보도와 댓글 등 여론의 흐름에 누구보다 민감한 한 장관이 정말 몰랐는지,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검증 과정에서 걸러냈을지는 궁금하다.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검증 실패에 따른 인사 참사는 ‘그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이 이렇게 문제가 될지’를 미처 몰랐을 때 벌어지곤 했다.
인사 실패는 인사권자와 당사자에겐 비극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좋은 쪽으로 한 발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했다. 관행적으로, 알음알음, 끼리끼리 해오던 일들이 검증 과정에서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더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기회가 돼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 검증 과정은 ‘학벌 세습’을 통해 부모가 누리는 기득권을 자녀에게 물려주려 했던 586세대의 내로남불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입만 열면 공정을 말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의 자녀를 위해선 불공정 게임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이후 ‘부모 찬스’는 중요한 검증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정부 들어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가족 전원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특혜 의혹으로 물러났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역시 자녀의 의대 편입 과정에서 ‘아빠 찬스’ 논란이 불거져 자진 사퇴했다.
‘혐오발언’을 일삼던 김성회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의 자진 사퇴는 공직자의 언어에 대해 다시금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학계에서 관행처럼 해오던 논문 표절에 급제동이 걸린 건 2006년 김병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발탁됐을 때였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는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더 글로리’와 맞물리며 여론의 뇌관을 건드렸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여전히 불행한데 가해자는 서울대 입학해 버젓이 잘살고 있다는 대목에서 민심이 폭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관련 기사 댓글에는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가해자와 그 부모의 대응에 여전히 악몽 속에 살고 있다는 폭로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서울대 학생들이 징계 문제까지 제기하면서 대학도 시험대에 올랐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수시와 달리 정시를 통해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터라 정시 전형에도 변화가 생길지 시선이 쏠린다.
이 와중에도 검사 출신인 여당의 어느 의원은 ‘아들을 국가수사본부장에 앉히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정 변호사 두둔 발언을 내놨다. 그게 현재 여당이나 검사들의 보편적 인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은 자녀가 가해자가 된 사건에 대한 부모의 대응 또한 공직자의 기준이라 생각하며 따져보기 시작했다. 내 자식만 생각해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한껏 휘두르는 이들은 고위 공직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선고를 국민이 내린 셈이다.
정순신 인사 실패는 학교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이 개인적인 영역에서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검증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걸 분명히 가르쳐줬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