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달성(70) 금산갤러리 대표가 한국화랑협회 새 회장에 연임됐다. 지난 23일 화랑협회 정기총회에서 제21대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부회장을 맡았던 도형태(54) 갤러리현대 대표와 치열한 경합 끝에 이겼다. 69대 68. 딱 한 표차의 승리였다. 직전까지 화랑협회 회장의 연임은 제15대, 16대 회장을 지낸 표미선 표화랑 대표가 유일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결과가 말한다. 한 표차라도 승리는 승리다. 하지만 절반의 표는 기존 황 회장 체제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보내며 반대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반대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토종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화랑협회는 전국 160여곳 화랑이 회원으로 가입한 화랑들의 최대 이익단체다. 미술품 감정과 화랑미술제(봄), 키아프(가을) 등 아트페어 개최가 주요 사업이다. 국내 화랑들만 참여하는 화랑미술제에 비해 키아프는 국제적인 행사라 더 중요하다. 키아프는 2019년부터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등 세계적인 갤러리가 참여하며 성가를 높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전격 취소됐다가 2021년 1년 만에 연 키아프에서는 유동성 완화, MZ세대 유입, 보복소비 심리 등의 효과가 겹쳐 사상 최대인 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황 회장 1기 체제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영국 프리즈의 서울 유치를 치적으로 내세운다. 이 과정에서 도 부회장이 특히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프리즈의 서울 상륙은 역설적으로 키아프의 실력을 드러내는 사건이 됐다. 5년간 계약을 맺은 첫해인 지난해 가을 코엑스에 열린 데뷔전에서 프리즈는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렸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가고시안을 비롯해 하우즈앤워스, 타데우스로팍 등 외국 갤러리들이 참여하며 수십억원짜리 작품을 손쉽게 팔아치운 덕분에 프리즈는 나흘 동안 650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키아프는 매년 밝히던 판매액을 처음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프리즈가 발 디딜 틈 없던 것과 달리 키아프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매출 하락은 예상했지만 키아프가 발표조차 못하고 쉬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놀랍게도 프리즈와 키아프는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 프리즈는 영국에서 발간되는 현대미술 전문잡지 프리즈의 발행인 어맨더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마음 맞는 갤러리들과 합심해 2003년 출범시켰다. 키아프는 화랑협회가 2002년에 시작했다. 그사이 프리즈는 영국을 넘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진출하며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성장했다. 키아프는 동네 미술장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면서 성장시키려 한 키아프는 거인 옆에 서서야 ‘참혹한 실체’를 드러냈다.
명불허전 프리즈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엄격한 심사를 통한 ‘품질 관리’에서다. 프리즈는 엄선한 전 세계 110개 갤러리를 참여시켰다. 한국 갤러리는 12곳만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반면 키아프는 코엑스 외 세텍에서 열린 ‘키아프 플러스’까지 포함하면 총 350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프리즈의 3배가 넘는 이 갤러리 숫자는 무얼 말하는가. ‘골고루’ 기회를 주는 온정주의의 결과다.
황 회장을 지지한 모 화랑 대표는 “모든 화랑을 골고루 소중하게 챙기는 협회 회장님”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안다. 실력은 N분의 1의 균등주의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대안 언론사를 운영하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말했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모질게 굴 필요가 있다”라고.
황 회장에게 묻고 싶다. 모질게 굴 준비가 돼 있는가. 그럴 마음이 없다면 키아프의 미래는 없다. 오히려 아트부산처럼 개인 사업자가 하는 대안의 아트페어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