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감사원이 문재인정부 시절 집행된 문화예술계 지원금 감사에 나선 것이 알려졌다. 윤석열정부가 노조나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관리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공적 지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예술계도 ‘법치’를 내세워 손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감사원은 통상 감사일 뿐이라고 했지만, 문화예술계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집권하면 바로 문화예술계 감사를 시행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을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감사원의 집중감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예산 축소와 파행으로 이어졌다.
국내 대표적 문화운동 단체인 문화연대가 윤석열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금 감사에 대해 발표한 “범인은 문화예술인이 아니라 무능한 관료주의 정부다”라는 제목의 성명은 그런 우려를 담고 있다. 문화연대는 “윤석열정부는 이명박·박근혜정부처럼 문화예술인에 대한 국가 통제를 위해 문화예술 지원금에 접근하지 말라”면서 “무엇보다 문화예술 지원금과 관련하여 불특정 다수의 문화예술인을 함부로 ‘범인’ 취급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물론 문화예술계에서 지원금 부정수급 사례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원금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행정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게 문화예술계의 주장이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 지원 정책의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부패한 관료주의 행정 때문이다. 현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은 사라진 채 자신들의 이해에만 충실해 문화예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국내 문화예술 지원 제도는 문화연대가 지적했듯 아이러니하게도 관료주의 덕에 투명성이 계속 높아졌다. 특히 디지털 강국답게 예술지원금 배분과 정산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큼 정교하다.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의 경우 지원금을 관리하는 행정 편의성을 위해 각각의 항목이 매우 구체적이며 증빙서류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윤석열정부가 정말 문화예술 발전을 꾀하려면 지원금 감사보다 난맥상인 문화행정 개혁을 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매우 커졌지만, 관료주의 탓에 그 생태계에 걸맞은 행정을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계의 근간인 국공립 예술단체 사례를 보자. 과거 문화정책이 부재하던 시기에 운영에 대한 체계적 고민 없이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등 공공극장과 전속 예술단을 만들다 보니 예술 생태계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특히 전속 예술단의 경우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60세 정년 등 공무원에 준해 운영돼 발전이 정체되고, 민간보다 실력이 더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 서울시향 등 몇몇 국공립 예술단체는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키는 등 변화를 꾀했지만 전용 공연장의 부재 등으로 발전이 한계에 부딪혔다. 이렇게 제 기능을 못하는 공공극장과 국공립 예술단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게 바로 문화행정의 역할이다.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재인정부 시절 문화예술계는 문화행정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정부 지지율이 높았고,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아 개혁에 최적의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개혁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것인지, 관료주의의 집단적 저항에 부딪힌 탓인지 아니면 인기를 잃을까 눈치만 본 것인지 좋은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윤석열정부가 빠른 실행력으로 문화행정 개혁에 나선다면 문화예술계도 그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을까.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