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과거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우리와 협력하는 파트너라는 선언이다. 그러면서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위안부 등 구체적인 과거사 현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전임 대통령들이 3·1절마다 강조했던 일본의 사과나 태도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일본은 가해자이며 위안부 문제는 반인륜적 인권 범죄”라고 비판한 것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파트너라고 규정한 것은 과거사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미래를 향한 양국 간 협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라는 치욕스러운 과거를 경험했다. 불행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은 경제·외교·문화 등 다방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이웃 국가다. 최근 북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미·일의 안보 협력 문제가 과거보다 중요해졌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탐지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중 신냉전 대결 구도가 심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대만 해협 갈등 고조와 같은 외교 안보 난제들도 산적해 있다. 한·일 간 교류도 활발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558만명이었고,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327만명이었다. 최근 코로나가 진정되자 일본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일 관계는 늘 정치적 논쟁거리였다. 일본과의 화해를 말하면 친일파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외교 문제가 국내 문제로 변질돼 국익이 손상되는 경우도 잦았다. 당장 야권은 “3·1운동 정신의 훼손” “대일 굴욕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대립과 갈등만 무한정 반복할 수 없고, 그런 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한·일 간에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강제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수출 규제, 일본 군사 대국화에 대한 우려 등이다. 복잡한 현안을 풀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일본의 사과와 반성 표시, 강제동원 당사자인 일본 기업의 피해자 지원재단 참여 등이 필요하다. 모처럼 조성된 양국 관계 개선 움직임이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파트너라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일본이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