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만 현장 5곳 찾아… 이재용 ‘기술 초격차’ 진두지휘

입력 2023-03-02 04:05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차세대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현장 경영이 뜨겁다. 회장에 취임한 지 넉 달째를 맞으면서 속도를 더 붙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현장 강행군’의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와 ‘신경영 선언’ 사이에서 미래 성장동력 발굴, 현장 경영을 중심축으로 내실 다지기에 주력한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회장의 현장 강행군은 연말 조직개편의 열쇳말인 ‘기술 초격차’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달에만 반도체(Chip), 디스플레이(Display), 배터리(Battery) 등 핵심기술 분야의 국내 사업장 5곳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일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을 시작으로 같은 달 7일에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3년 만에 찾았다. 조부인 이병철 선대회장의 ‘도쿄 선언’ 40주년을 하루(8일) 앞둔 날이었다.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패널의 생산라인을 둘러본 이 회장은 핵심 개발직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반도체 한파로 영업이익 급감 사태에 직면한 삼성전자도 집중적으로 챙긴다. 이 회장은 지난달 17일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를 찾아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차세대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이어 21일에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를 방문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신제품 시연을 참관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마이크로 LED 등 차세대 기술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오는 9일 출시하는 2023년형 네오 QLED, OLED TV 등 신제품 TV의 리모컨을 살펴보면서 “사용자가 채널·볼륨 키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데 무심코 잘못 누르는 경우가 있다. 디자인할 때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이 회장은 지난 27일 삼성SDI 수원사업장을 찾아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시험생산(파일럿) 라인을 살폈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전기차에 주력으로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충전 속도도 더 빠르다.

이 회장의 강행군을 두고 재계 안팎에선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같은 미래 주력기술에 방향타를 맞췄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신경영 선언’을 내놓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오는 15일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은 빠져 있다.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이사는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미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혐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수년째 법정 출석을 이어가고 있는 탓에 등기임원에 복귀해 논란의 불씨를 지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가전 시장 불황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외부 변수들이 산적해 있다. 이를 돌파하고 조직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현장 경영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내실부터 챙기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1일 분석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