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언어로 살핀 홍범도 발자취… “그가 빨갱이란 건 오해”

입력 2023-03-02 21:51
이동순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민족의 장군 홍범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집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길사 제공

올해 순국 80주기가 되는 홍범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의 평전이 출간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73) 영남대 명예교수가 쓴 ‘민족의 장군 홍범도’가 그것으로 8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이 시인은 40년 넘게 홍범도 연구에 매달려왔으며 2003년 홍 장군의 생애를 다룬 대하서사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를 발표하기도 했다.

1868년 평양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백두산 포수 출신의 항일 의병장이다. 당시 대부분의 의병장이 양반 유생 출신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드문 경우다. 이 시인은 지난달 28일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을 문학 작품으로 엮어보겠다는 포부를 품고 1980년대 초반부터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들여다봤다. 대부분이 유생 출신이었는데 두 분이 좀 달랐다”며 “평민 출신의 신돌석과 포수 출신의 홍범도가 있었는데, 신돌석은 그래도 좀 알려진 분이었지만 홍범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홍범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홍 장군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는 물론이고 2021년 유해 봉환까지 담아냈다. 촘촘한 사실에 시적인 문장, 소설적 묘사가 더해져 문학성 높은 평전이 됐다. 특히 여덟 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더부살이를 하다가 열다섯 살에 군대에 입대하고 탈영해 포수가 되는 유소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의 평전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 시인은 “홍범도 장군에 대한 시를 쓰려고 하니까 자료가 너무 없어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2000년에 미국에 방문교수로 갔다가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쪽에서 나온 장군 관련 기록들을 발견해 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의 한인 공연단체인 고려극장 극작가 태장춘이 홍 장군을 존경해 식사를 대접하곤 했는데, 그 때 홍 장군의 구술을 태장춘의 부인 리함덕이 기록한 ‘홍범도 실기’가 있다. 그게 홍 장군의 어린 시절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책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홍범도 의병대의 항일무장투쟁을 다룬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항일무장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전과다. 책에는 홍범도 부대가 전투를 치르는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홍 장군은 1920년 10월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과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를 치른다. ‘청산리 대첩’이라고 불리는 이 전투는 10월 21일 시작돼 26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적의 연대장을 포함해 1200명을 사살하고 독립군은 100여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일본군의 간도 출병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고, 독립군이 거둔 최대의 전과였다.

청산리 대첩은 오랫동안 김좌진 장군 중심으로 기술돼 왔다. 이 책은 청산리 대첩에 속하는 청산리·백운평 전투, 완루구 전투, 샘물둔지·어랑촌 전투, 오도양차·맹개골·고동하 전투의 현장을 그리며 홍범도 장군을 또 다른 주역으로 부각한다.

이 시인은 “홍범도는 다른 독립군 대장들과 달리 서민적이고 탈권위적인 모습이 감동을 준다”며 “홍범도 부대는 사령관이나 말단 부하나 똑같은 군복을 입었고 계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군율은 굉장히 엄했다”고 평가했다.

대패한 일본군은 간도의 조선인 학살(간도대학살)을 자행했고, 홍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들은 중국 동북지방과 맞닿은 소련 땅 자유시(스보보드니)로 대피했다. 거기서 소련의 무기 반납 명령을 둘러싸고 독립군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 서로 총을 쏘는 ‘흑하사변’ 또는 ‘자유시참변’이라고 부르는 비극을 겪는다.

홍 장군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남은 생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고려극장 경비원과 정미소 일꾼으로 일했다. 그리고 1943년 10월 25일 저녁, 가난한 단칸방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5세.

이 시인은 홍 장군의 후반 삶과 관련해 공산주의자라는 오해가 있다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범도가 독립군 무장 해제를 요구한 소련 공산당 편을 들었다, 그러니 빨갱이다, 배신자다, 이런 관점이 국내에 있다. 하지만 홍범도는 소련 땅에 왔으니 당분간은 소련의 지시를 따르고 소련의 힘을 빌려 우리 힘을 키우자는 중도 노선을 선택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동족 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참변 후 남아서 뒷정리를 다 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