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탈북어민 강제 북송’ 정의용·노영민·서훈·김연철 기소

입력 2023-03-01 04:04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이 북한으로 송환되고 있는 모습. 통일부 제공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들을 강제 북송시킨 혐의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나란히 재판에 넘겨졌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이은 ‘강제 북송 사건’ 수사를 통해 문재인정부의 대북·안보라인 핵심 인사 대부분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28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이들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 전 실장 등은 2019년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된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원장에게는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도 적용됐다. 합동정보조사 결과보고서에 담겼던 탈북 어민들의 귀순 요청 사실을 삭제하고, 조사가 종결된 것처럼 허위 보고서를 작성시켰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8개월간의 수사 끝에 탈북 어민 북송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 추방 조치였다고 결론 내렸다. 헌법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 주민을 귀순 의사에 반해 돌려보내는 건 법률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나포 이후 5일 만에 ‘초고속 북송’이 이뤄진 배경에는 남북 관계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수사팀은 봤다.

당시 정부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고, 그해 6월 ‘삼척항 무단입항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됐던 상황이었다.

검찰은 “중대 범죄자를 북송한 것”이라는 전 정부 인사들의 항변도 사법 절차를 뛰어넘은 추방 조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도피를 목적으로 귀순 의사를 밝혔다 해도 국내에서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겼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 어민을 받아들였다면 흉악범죄를 저지른 탈북민이 한국을 도피처로 삼는 전례가 되는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검찰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이 사건 이후 ‘한국으로 탈북하면 다 잡혀서 북송된다’는 소문이 퍼져 육상·해상으로 바로 남한에 들어오는 탈북자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북송된 2명은) 높은 가능성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확인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안보라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정 전 실장을 지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현재까지 검찰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도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기소했다. 서훈 전 원장도 당시 구속 기소돼 강제 북송과 월북 조작 사건 모두에서 재판받게 됐다.

정 전 실장 측은 입장문을 내 “검찰 논리는 헌법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단선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라며 “이번 수사는 정권교체 후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수사”라고 반박했다.

임주언 신지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