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의 동룡,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석구, ‘카지노’의 정팔. 배우 이동휘는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친근하고 부담 없는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최근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어쩌면)에선 찌질한 현실남친 준호를 능청스럽게 표현했다.
‘어쩌면’ 개봉을 앞두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휘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를 촬영하기 전 1년 가까이 일을 안 하고 있을 때 영화 출연 제안이 왔다. 형슬우 감독이 예전에 만든 단편영화들을 보니 재밌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헤어진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는데 담이 걸려서 목이 안 돌아가는 ‘웃픈’ 상황 등 설정과 이야기가 신선해서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영화는 사랑하던 두 남녀가 헤어지고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렸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와 장면들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동휘는 “준호는 여자친구에게 더이상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데 대한 죄책감과 무기력함, 미안함 등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인 고민 때문에 헤어지는 수많은 커플이 있지 않느냐”며 “작품 속 인물이 무조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선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는 아쉬운 상황,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어쩌면’에선 비극적인 상황 속 희극적인 모습이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이동휘는 “그런 게 곧 인생인 것 같다. 일부러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코미디같은 장면이 발생하고, 그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기도 한다”면서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만 있다면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강조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는 이동휘에게 그만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여유를 줬다. 그는 “상업영화에는 ‘주인공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결말이어야 한다’는 식의, 누군가 만들어놓은 공식들이 있다”며 “저예산 영화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자유롭기 때문에 많이 끌리는데 많은 배우들이 그런 갈증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배우들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으로 많이 가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대중에게 각인된 유쾌한 이미지는 이동휘에게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그는 “관객들에게 웃음에 대한 기대를 주는 배우가 된 건 양날의 검이다. 기대에 감사하면서도 관객들과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실망을 주게 된다”며 “작품을 선택할 때 더욱 더 신중해진다. 다른 요소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단역, 조연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다져왔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부담이 크다. 이동휘는 “처음 사랑받은 작품이 ‘응답하라 1988’이었는데 전국민이 봤을 정도로 기억되는 드라마다. 모든 걸 쏟아낸 작품”이라며 “사람들에게 ‘저 사람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구나, 잘 여물고 있구나’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인생에 한 번도 없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