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처럼 세계사에 긴박한 순간이 연이어 발생한 적은 근래 드물었던 것 같다. 중국 정찰풍선의 등장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취소, 중국의 대러 무기 지원설이 폭로된 뮌헨안보회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깜짝 방문, 러시아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 선언 등 굵직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들인데 여기서 국제질서를 주도하려는 미국 전략의 얼개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 3일 예정됐던 블링컨 장관 방문을 꽤 마음 쓰며 기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로리 대니얼스는 “중국은 미국에 강경할 수 있고, 또 열린 대화채널을 통해 이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블링컨 장관 방문을 “‘제로 코로나 정책’이 완전히 끝났고, 이제 세계와 교역을 시작하려 한다”는 일종의 선전 전략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보 콜린 칼은 “중국은 (정찰풍선과 관련한) 모든 상황을 당혹스러워했다”고 꼬집었다. 블링컨 장관에게서 방문 취소 통보를 받기 전 중국이 ‘유감 표명’을 담은 성명을 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유럽 국가 연쇄 순방은 더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진행됐다. 왕 위원은 유럽에서 ‘개방 유지’ ‘탈세계화 저항’ ‘글로벌 생산과 공급망 안정을 위한 협력’을 주로 말했다. 미국의 수출 통제와 바이 아메리칸 정책에 불만이 쌓이고 있는 서방을 향한 구애였다. 전쟁 장기화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유럽의 마음을 꾀어 이들이 미국에만 밀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미국 주도의 방위 체제와 제재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동맹 사이에 퍼지도록 하는 데 있었다.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회담을 하자는 입장문 발표와 왕 위원의 러시아 방문을 2월 외교전의 하이라이트로 마련해둔 듯싶었다. 미국과 달리 평화를 사랑하는 적극적 중재자임을 드러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대국의 이미지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더라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제사회에 ‘미국에 대항할 중국이 돌아왔다(China is back)’는 울림을 줬을 수도 있다. 그는 세계에 존재감을 각인한 뒤 다음 달 4일부터 열리는 양회를 좀 더 평안하게 맞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과는 모두가 지켜봤듯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은 중국이 5개 대륙 40개국 이상에서 정찰풍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고 폭로했다. 유럽 순방을 준비하던 중국에 냉전시대의 음습한 스파이 이미지를 덧씌워버린 것이다. 뮌헨안보회의에선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폭로해 유럽 국가들의 분노를 샀고, 야심 차게 준비한 평화회담 입장문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구애의 답장으로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미국의 전술은 지난해 러시아를 상대로 군사기밀 공개에 나서며 압박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당시 미국은 전쟁을 막진 못했다. 하지만 침공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며 동맹을 규합해 러시아를 고립시켰다. 미국은 지금 같은 방식으로 중국을 대하며 그들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은 2월 내내 대형 외교 이벤트를 준비하며 화려한 복귀식을 계획했다. 하지만 남은 건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뒤로는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해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검은 속내를 지닌 국가 이미지뿐이다. 미국이 국제질서를 어떻게 유지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