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평범함의 힘

입력 2023-03-01 04:03

봄이 더 깊어지길 기다려 울산 태화강에 가려 한다.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아우돌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디자이너다. 그가 설계한 태화강 국가정원 내 1만8000㎡의 ‘자연주의 정원’은 국내외 가드너 20명과 울산 시민정원사 360명이 참여해 작년 10월 조성됐다. 이곳에 심어진 122종 4만8000포기 풀과 꽃은 찬 겨울을 견디고 이제 땅속에서 봄 기지개를 켜려 할 것이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 덕분이다. 1960년대 폐쇄된 뉴욕 맨해튼 서남부의 낡은 고가철도는 2009년 선형공원으로 재탄생되면서 뉴요커는 물론 세계인을 압도했다. 특히 북미 원산의 여러해살이풀(뿌리로 겨울을 나는 다년생 풀)과 그라스류(벼과 식물)를 자유자재로 조합해 언뜻 황폐해 보이지만 환상적인 색상과 질감이 어우러진 대초원(Prairie) 같은 녹지가 인상적이다.

아우돌프는 뒤늦게 독학으로 공부했고 1982년에야 네덜란드 동부 후멜로에 농장을 열었다. 유행이던 크고 화려한 꽃 중심의 정원식물이 아닌 지역에 자생하는 다양한 여러해살이풀과 그라스류를 수집 선발해 육종했다. 많은 재배와 관찰을 통해 여러 식물을 섞어 심는 복잡성 속에 조화와 통일을 이루고, 사계절 아름다우며 관리도 용이한 정원으로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북미 첫 프로젝트였던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루리가든을 통해 던진 신선한 충격은 뉴욕 배터리파크와 하이라인으로 이어졌다.

루리가든 조성 시 시카고 인근 슈렌버그와 마컴 대초원에서 발굴한 자생식물을 도입해 기존 디자인을 변경한 사례는 자연과 정원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작은 꽃에 개의치 않고 잎과 가지, 씨앗, 겨울 모습 등 숨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 지천에 많은 평범한 것들이 켜켜이 모여 물 흐르듯 조화롭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이는 삼일절을 만든 민초들의 힘과 일맥상통한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