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도 바울의 여정은 끝까지 험난했다. 오랜 선교 여행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환영도 잠시, 바울에 대한 괴소문으로 그를 벼르고 있던 사람들로 인해 바울은 큰 어려움에 빠져들어 가고 만다.
그들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며 무리를 선동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소요는 고발로 이어져 바울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계속되는 심문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가이사 황제의 판결을 받기 위해 제국의 중심 로마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일반적인 감옥이 아닌 가택에서 감시병과 지낼 수 있는 호의를 얻는다. 바울은 그곳에서 먼저 로마 유대인 지도자들을 청해 자신의 상황을 변호한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더 듣기를 원했고, 바울은 약속을 정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을 것을 권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재판을 앞두고 있는 피고의 신분이며 감시병에게 매여 있는 죄수의 몸이었다. 게다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로마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심문과 죽음의 위협을 거쳐 와야 했다. 그의 몸도 마음도 분명 만신창이가 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을 그의 처소로 초대해 복음의 환대를 베풀고 있다. 비록 그의 몸과 상황은 물리적으로 매여 있었지만, 그 매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파됐다.
무엇이 바울의 이런 삶을 가능하게 했을까. 단 하나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복음에 대한 증언에 완전히 매여 있었다. 그의 동족과 이방의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것도 그를 묶어두지 못했다. 복음에 매여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게 된다.
사도행전은 다시 한번 로마에서 바울의 행적을 짧게 요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바울은 로마에서 만 2년 동안 감시를 받으며 셋방살이를 지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환영하고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파될 수 있었다.
다소 의아하게도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 이후 바울에게 일어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바울의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적어도 사도행전 안에서 독자는 알 수 없다. 바울이 사도행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임을 고려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나 훗날의 이야기를 넌지시 남기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바울이 아닌 셋방에서도 거침없이 전파되는 복음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계와 상황을 뛰어넘어 제국의 심장부에서 전파되는 복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모든 족속에게 계속 전파되는 구원의 복음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등장했고 기적이라 불리는 여러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갖가지 사연과 사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와 교회, 특히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열정을 갖고 뛰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혹시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이름과 명성을 남기는 것에 연연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예수의 이름이 증거되는 것에만 만족을 누려야 한다. 사람은 또 지나가고, 우리의 시대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은 영원히 남는다.
(삼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