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비뚤어진 자녀사랑에 거대 시장된 학폭 사건

입력 2023-02-28 00:02

학교폭력(학폭) 가해 학생 ‘법정대리인’인 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폭력이 아닌 친구 사이 장난이었다”는 식의 주장으로 방어막을 치는 경우가 많다. 이후의 진학 문제 등을 우려해 소송전에 나서는 것인데 법조계에선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피해 학생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A군은 지난해 온라인 채팅방에서 한 친구를 겨냥해 “병XXX” 등의 욕설을 했다.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성적인 발언도 했다. A군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출석정지 처분 등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A군 측은 상대방이 장난으로 여겼다는 등의 주장을 폈지만, 법원은 피해 학생이 받은 고통이 가볍지 않다고 봤다.

학폭 행정소송전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폭행과 욕설 사건 등에 걸쳐 폭넓게 제기된다. 학폭 사건이 하나의 법률시장이 될 정도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학폭을 전문분야로 등록한 변호사는 17명이다. 2019년 4명에서 4배 이상 늘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증가 추세인 학폭 소송을 신속 심리하기 위해 지난 20일부터 전담 재판부를 신설했다.

부모들은 소송 전 단계인 학폭위 절차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변호사를 세우면서 학폭위가 변호사들의 대리전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법무법인 더앤의 이동현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하면 학교에 학생들 진술서를 확보해달라거나 CCTV를 보여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한다. 변호사는 법률적 쟁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 확보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가정마다 보통 자녀 한두 명에 불과하고 부모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학폭 소송이 ‘부모들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도 띤다고 말한다. 자녀 진로에 조금의 ‘상처’도 남기지 않게 하려고 거액의 소송전을 감수한다는 얘기다.

학폭위 단계에서 소송까지 진행하려면 심급마다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 이상이 변호사 비용으로 들기도 한다. 한 학폭 전문 변호사는 “일반인이 정순신 변호사처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 측은 아들 관련 소송에서 대법원까지 전부 패소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학폭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는 사례는 거의 없다. 아버지가 법률 전문가라 대법원 소송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끝까지 다퉈서 강제전학 처분을 생활기록부에서 지우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학 등 처분 후에도 가해 학생이 소송으로 버틸 경우 피해 학생과 분리 조치가 되지 않아 2차 가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학폭 전문 노윤호 변호사는 “가해 학생이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명백히 반성할 부분이 있다면 전문 변호사가 잘못을 인지하도록 현실적 조언을 해줘야 한다”며 “부모도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려는 게 과연 자녀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이형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