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역사가 60년이 채 되지 않는 동남아 변방의 작은 국가다. 부산보다도 작은 땅덩이에 인구는 500만명대에 불과하지만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투자금이 몰려드는 ‘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그 비결로 관치 없는 자유경쟁과 유연한 고용제도, 민·관 사이 신뢰 등을 지목했다.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의 이준원 상무는 지난 2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가 금융허브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낮은 규제 장벽을 꼽았다. 이 상무는 “싱가포르가 금융 선진시장이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특별한 제도나 인프라를 상상하지만 정작 비결은 ‘공정함’”이라며 “여기서는 누가 어떤 사업을 하든 모두가 공평한 룰을 적용받고 자유롭게 경쟁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투자 문턱이 거의 없거나 낮은 나라다. 외국 자본도 법과 규정만 준수한다면 얼마든지 로컬(토종) 기업을 제치고 성행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현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 화교은행(OCBC) 외에도 홍콩상하이은행(HSBC),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성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 규제 조건을 맞추기 까다로운 나라다. 권기정 NH투자증권 싱가포르법인장은 지난 21일 현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외환위기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외화보유고가 얼마인지, 외국인이 은행 등 우리나라 핵심 자본을 얼마나 쥐고 있는지에 굉장히 민감하다”며 “과거에 발목 잡혀 옛날식 규제를 계속 이어나가면 리스크는 그만큼 줄겠지만 혁신도 더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인 투자 지분이 많다 보니 금융 당국의 ‘관치’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이 상무는 “싱가포르의 외국계 회사는 금융 당국의 관치 시도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컬 회사도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싱가포르에 대한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금액(FDI)은 2조4790억 달러에 달한다.
유연한 고용제도도 싱가포르 자본시장의 장점 중 하나다. 권 법인장은 “싱가포르에서는 정규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년까지 보장되지 않는다. 모두가 1년마다 자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측과 협상하고 이직도 자유롭다”며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 연봉을 매년 올리는 경우가 상당하고 직원들은 자기개발에 더 힘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민의 정부와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도 상당하다. 이 회사에서 투자 운용역으로 근무 중인 호이밍 입씨는 “싱가포르인 10명 중 9명 이상은 금융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고 믿는다”며 “펀드매니저의 운용 성과를 지적하는 여론은 있지만 금융기관이나 금융 당국에 대한 이유 없는 적대심은 없다시피 하다”고 전했다.
싱가포르=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