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재 수출 많은 韓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 위험에 맨몸 노출

입력 2023-02-28 04:05

미·중 패권 다툼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첨단 정보기술(IT)이 공급망 재편 흐름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도체, 전기차 부품 등 주요 중간재 수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 지정학적 위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수출 구조의 다변화가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7일 ‘미국과 중국의 첨단 IT 공급망 재편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전기·광학기기 부문에서 한국의 전방 참여율이 2021년 기준 57%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전방참여율은 국내 수출품이 수출 상대국의 중간재로 사용되는 정도를 보여준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수출을 통한 해당 국가의 공급망 참여도가 높다는 의미다.

SGI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 구조가 글로벌 공급망 격변을 그대로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전기·광학기기의 대미(對美) 수출 가운데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비중은 91.2%, 미국을 경유해 제3국으로 다시 수출되는 비중은 8.8%로 집계됐다. 이와 달리 대중(對中) 수출의 경우 중국 내 소비 비중이 70.4%, 제3국 수출이 29.6%였다. SGI는 “한국 수출품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 맞춰져 있어 향후 교역질서 재편에 따른 변화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도체 칩·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생산시설 등을 자국에 유치하고 있다. 이는 기존 교역망 체계를 뒤흔들고 있고, 중간재 위주인 한국 수출 구조의 변동성을 키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간재 수출 감소액은 96억1000만 달러로 총 수출 감소액(91억8000만 달러)을 웃돌았다. 여기에다 대중 중간재 수출이 둔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 간의 경쟁이 심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GI는 “첨단 IT 산업의 공급망은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축으로 이원화할 것이다. 중국 외에 추가 수출시장을 발굴하고, ‘탈 중국’ 기업에 대한 한국 복귀(리쇼어링) 혜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