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사 원·하청업체 대표들과 고용노동부 장관, 울산시장 등이 27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공사가 이뤄진 만큼 주는 돈)을 인상하는 대신 협력업체는 임금 인상률을 높이고 재하도급을 줄여 사내 협력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선업계에 고착화된 원·하청 간 현격한 근로조건 격차를 줄임으로써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취지의 협약이다. 지난해 6~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고용노동부는 그해 10월 ‘조선업 격차 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날 협약은 그 첫 결실인 셈이다.
기성금 인상으로 지불 여력이 높아지면 하청업체도 노동자 임금을 올려줄 여지가 커진다. 원청이 공사대금을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계좌에 예치해 이곳에서 하청 노동자에게 급여가 지급되도록 하는 방안도 하청업체의 임금 체불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청업체가 4대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는 대신 원청이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정부는 연체금 면제·체납처분 유예 등의 조치를 시행키로 한 것도 안전망 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조선업 원·하청 이중구조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협약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원·하청 갑을 관계가 고착화돼 있는데 선의와 자율에 맡겨두는 방식으로 상생 방안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180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구조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원·하청 노조가 불참해 상생협약의 의미가 반감됐지만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조선 5사 원·하청 업체와 정부는 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실효성을 높여가야 한다. 협약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도움이 되고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노조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업에서 물꼬를 튼 상생협약이 안착해 다른 업종으도 확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