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필요한가

입력 2023-02-28 04:04

2020년 3월 초로 기억된다. 그해 임금 인상률이 평가등급 B 기준 1.4%였다. 실질 물가상승률이 얼만데…. 사무직 노동조합이 없으니 회사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구나! 또 노조가 있는 생산직 조합원들에겐 상사의 상대평가 결과가 임금 인상 및 경영성과급 지급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데 사무직들만 영향을 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불공정 아닌가. 그해 초 교섭 대표 노조인 민주노총 지회의 생산직 노조위원장실에서 사무직 부서 책임자에 대한 비인격적 행위도 있어 후배 부서 책임자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 노조가 지난해 2월 탄생한 건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출범 첫해 각종 고충을 겪고 있는 와중에 10월 초 지금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LG전자 사람중심 노조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소수 노조를 위한 협의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뜻을 같이하겠냐는 것이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찬성했다. 8개 노조(LS일렉트릭 사무노조,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부산관광공사 열린노조,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 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 노조) 대표들이 뜻을 모았다.

8개 노조는 세 차례 주말 사전회의를 거쳐 지난 4일 협의회 설립 결의문을 채택한 데 이어 지난 21일 발대식을 개최해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우리가 기존의 거대 노조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협의회를 만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투명하지 않은 성과급 기준과 임금 개선에 대한 열망이 특히 MZ세대라 불린 젊은 노조원 사이에 가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합은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과 조합원 복지 향상 및 불공정 처우 개선에 주력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정했다.

또 하나는 현재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대한 조합원들의 염증이다. 원래 노조란 직원의 복리후생과 처우 개선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양대 노총이 이를 외면하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노조가 왜 미군 철수를 주장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회의감 때문에 기존 노총과는 별개로 소수 노조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대한민국에 복수노조가 허용됐지만 교섭 창구 단일화란 제도로 인해 사실상 소수 노조는 사측과 교섭이 불가능했다. LG에너지솔루션 노조도 연구기술사무직의 교섭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 창구 분리 결정 요청을 했으나 두 달 뒤 기각됐다. 단일 기업의 소수 노조로는 제도의 불합리성에 맞설 힘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새로운 노조 협의회인 만큼 기업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도 하고 싶다. 최근 기업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두되고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들은 ESG 공시 의무를 충족해야 한다. 2030년부터는 코스피 전체 상장사에 적용된다. 협의회는 특히 사회적 책임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생의 파트너가 될 생각이다. 이를 통해 노조가 ‘항상 투쟁만 한다’는 일반인의 부정적 시각을 바꾸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많은 노동자의 진정한 권익 향상을 위해 당찬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이제 막 발걸음을 뗀 협의회가 구성원이 공감하는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협의회는 그때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자율성을 기본으로 ‘노동조합의 본질’을 깊이 되뇌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전승원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