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반(反)공유재 비극과 규제 곱셈법칙

입력 2023-02-28 04:02

‘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은 임자 없는 자원을 사람들이 마구 채취하고 잡아가서 그 자원이 고갈되거나 멸종되는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임자가 너무 많을 때에는 ‘반(反)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Anti-Commons)’이 발생한다. 즉 재산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을 때 각자가 다른 사람들의 재산권 행사를 거부해 사실상 재화가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일례로 어떤 집을 유산으로 받은 형제가 여럿이어서 공동으로 소유권을 갖고 있을 때 골치 아픈 경우가 생긴다. 형은 월세를 놓으려 하고, 동생은 팔아서 나누자 하고, 큰누나는 전세를 놓아 그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자고 하는 등 서로 의견이 갈리면 유산으로 물려받은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첨단 전자제품이나 신약 개발의 경우 다양한 특허와 기술에 대한 소유권이 여러 당사자에게 나뉘어 있어 일일이 비용을 지불하고 허락을 받는 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는 경우가 나타난다.

규제 분야에서도 ‘규제의 곱셈법칙’이라는 유사한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의 행위에 대해 여러 이해당사자와 규제기관이 존재할 때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0 아니면 1인 두 수를 여러 번 곱할 때 하나라도 0이 있으면 그 답은 무조건 0이 되는 것처럼 여러 이해당사자나 규제기관 중 하나라도 규제 완화를 완강히 거부하면 규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교통 및 에너지 인프라, 산업설비, 유통단지 등 다양한 시설의 건설과 운영에 대한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백두대간을 건너오는 송전선 건설이 늦어져 동해안에 건설한 여러 석탄발전소와 원전의 가동이 제약을 받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장소를 아직 마련하지 못해 이제 몇 년 후면 원전 가동도 중지해야 할 판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광주에 이해당사자와 정치권의 반대로 복합쇼핑몰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대형유통점에 대한 격주 일요일 의무휴업일 규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평일 의무휴업일 제안에 대해 이해당사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충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 단지의 건설은 곳곳에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처럼 입지 문제와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논란이 되는 시설과 관련된 자원의 재산권이 다양한 주체에게 나뉘어 있고 관련 규제에 대한 권한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층층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에 따르면 이 같은 시설 건설은 그 사회적 편익이 사회적 비용을 넘어서고 이해당사자 간 경제적 편익과 비용 재조정에 대한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역사에서 성공적 결과를 가져온 고속도로, 원전, 인천공항, KTX 등 인프라 건설도 수많은 규제를 해결하고 여러 재산권 보유자가 거래와 타협, 소통으로 반공유재의 비극과 규제의 곱셈법칙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사거리에서 차들이 서로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교통 정체가 나타나는 ‘그리드록(Grid-lock)’과 유사한 사항이다. 관련 정부 부처와 규제 당국은 이해당사자의 재산권 보호와 함께 전체적인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살펴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리드록 문제는 서로 양보하라고 우기면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을 한 대씩 빼내어 교통 정체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