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채용비리와 헤어질 결심

입력 2023-02-28 04:01

채용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누구나 마주쳐야 하는 현실이다.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한 출발선이면서 이후 인생의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채용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이유다. 불행히도 현실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모 은행장은 2015∼2017년 부정청탁으로 채용된 입사자가 그 은행에만 수백명에 달한다고 했다. 당시 은행 등 금융권에서 발생한 채용비리는 일회성 비리가 아니라 은행 임원이나 거래업체 자녀 등에 대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2016∼2020년 사립학교 교원 부정채용 건수는 240건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설 현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노조의 채용 강요로 신고된 것만 해도 57건이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서 채용이 오염 상태인 것이다. 현대판 음서제 아래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불공정에 분노하고, 바꿀 수 없는 신분의 벽 앞에 좌절하는 것밖에 없다. 실력보다 인맥과 연줄에 의해 채용이 결정된다면 누가 노력할 것인가. 실력이 있어도 채용되지 않는다면 실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 인적 자원의 수준은 저하되고 산업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청년의 미래와 함께 사회의 미래도 붕괴될 것이다.

채용비리 단속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부 공공부문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 금융기관 등 민간부문 채용비리를 근본적으로 규제하는 법은 없다. 현행 채용절차법은 부당한 청탁·강요나 재산상 이익 제공을 한 사람에게 과태료만 부과한다. 규제 대상이 좁고 처벌 수위는 낮다. 형법의 업무방해죄에 의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채용비리 근절에 효과적인 수단은 아니다.

판례에 따르면 면접 과정에서 면접위원들이 모두 공모하면 업무방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부정청탁자에게 유리하도록 선발 기준을 변경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 절차를 별도로 운영하는 식의 다양한 편법은 형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채용비리 피해자는 엄연히 지원자이지만 업무방해죄는 기업 그 자체 또는 면접위원을 피해자로 보기 때문에 채용비리로 탈락한 지원자에 대한 배상도 어렵다.

기존 제도로 채용비리를 근절시킬 수 없다면 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관철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업종에 관계없이 모집, 평가 등 채용의 전 과정에서 모든 지원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공정한 경쟁 과정을 거쳐 채용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위반 기업에는 처벌을, 준수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채용비리로 합격한 지원자에겐 채용 취소를, 탈락한 지원자에겐 적절한 배상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채용 질서 왜곡을 시정하기 위한 채용절차법의 전면적 개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승욱(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