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코리아’ 23년 이어진 굴욕, 현실은 여전히 ‘늪’

입력 2023-02-27 00:02

한국 기업들의 만성적인 주가 저평가를 일컫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단어는 2000년 10월 처음으로 국내 언론에 등장했다. 이후 23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무역규모 면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1월 코스피는 1059.04에 개장했다. 지난 24일 종가가 2423.61인 점을 감안하면 23년 새 코스피는 2.29배 성장하는데 그쳤다. 반면 국내총생산(GDP)은 5764억 달러에서 2021년 1조8102억 달러로 3배 넘게 증가했다. 경제 성장세와 비교해 대표 주가지수는 3분의 2 정도 수준밖에 성장밖에 이루지 못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한국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2.2배에 그친다. 미국(23.4배) 영국(15.5배) 일본(15.7배) 등 선진국은 물론 인도(24.6배) 대만(13.1배) 등 신흥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PER은 기업의 순이익 대비 주가가 얼마나 높은가를 측정하는 지표다. 한마디로 한국 기업들은 해외 주요 기업과 비교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낮은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자본시장 저평가의 핵심 요인으로는 취약한 지배구조가 꼽힌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들이라는 인식이 강한 해외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오너(사주)’ 입김이 강한 탓에 기업 운영이 소수 대주주의 뜻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식회사임에도 가업처럼 자식에게 승계되는 경우가 빈번하고, 오너의 잘못된 결정이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오너 전횡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거수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미흡한 주주 보호책도 문제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모건스탠리(MSCI) 한국지수에 포함된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평균 배당수익률은 2.48%로, 주요국 24개 가운데 20위에 불과하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기업 핵심사업부를 떼어내 상장시키는 ‘묻지마’ 물적분할도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이 경우 기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 모기업 주주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국내 증시에서 펀더멘털을 고려한 장기투자보다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단타’가 유행하게 된 이유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주가조작이나 주주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물적분할 등 시장 참여자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 행위를 선진국 수준의 강도 높은 규제를 통해 엄단해야 시장이 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