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뇌전증’을 통한 병역면탈을 도운 브로커 구모(47)씨 의뢰인 중에는 가짜 증세로 4급 대체복무 판정을 받고도 만족하지 않고 실질적인 군 면제인 5급을 받을 때까지 뇌전증 연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국민일보가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브로커 구씨의 공소장을 보면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병역의무자들은 최초 병역판정검사에서 1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몇 년에 걸쳐 거짓으로 뇌전증 증상을 호소하고 연기도 하면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병역판정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은 A씨의 경우 아무런 증상이 없었음에도 구씨에게 받은 시나리오에 따라 2020년 3월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을 찾아가 뇌전증 증상을 호소했다. 당시 A씨는 의사에게 “작년 9월쯤 카페에서 1분 정도 대화 도중에 경련이 발생했다. 작년 11월에도 경련이 발생했었고, 지난주 목요일에도 1분10초 정도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어지러움을 느꼈는데 정신을 차리니 소파에 앉아있었다”면서 증상을 꾸며냈다. 몇 개월 새 여러 차례 쓰러졌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A씨는 결국 2021년 4월 ‘상세 불명의 경련’이라는 진단서를 받아 서울지방병무청에 제출했고, 같은 달 진행된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군 대체 복무를 하는 보충역 판정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뇌전증약을 처방받았으며 결국 지난해 5월 5급 전시근로역을 판정받았다.
구씨를 통한 또 다른 병역면탈자 B씨는 1년간 병원 두 곳에서 뇌전증 증상을 거짓으로 호소했다. 그는 2016년 병역판정검사에서 1급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지만, 구씨의 각본에 맞춘 연기 끝에 2021년에는 ‘경련성 질환’으로 재신체검사 대상인 7급 판정을 받았다.
구씨는 보호자로 행세하며 병역면탈자의 병원 진료에 동행, 허위로 뇌전증 증상이 있는 것처럼 의사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병역면탈 방법을 알려주면서 한 번에 800만원에서 많게는 3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들도 공범이었다. 병역면탈자들은 시나리오대로 쓰러진 뒤 응급실로 후송되는 등 병원 기록을 남겼는데, 이때 가족들은 119에 신고하고 거짓말로 증상을 증언하는 등 범행을 도왔다. 서울남부지검·병무청 합동수사팀은 구씨와 공모한 병역면탈자 42명, 범행을 도운 가족·지인 5명 등 모두 47명을 지난 9일 기소했다. 구씨는 지난달 27일 열린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