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달아 꿈틀대는 소주값… 정부가 가격인상 틀어막나

입력 2023-02-27 04:05
주류업계가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서며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26일 서울의 한 마트에 진열된 소주 제품 모습. 연합뉴스

‘서민의 술’이라 불리는 소주 가격이 1병당 6000원대로 치솟을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주류업체는 소주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비 등이 올라 소주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뚜렷한 인상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주류업계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소주값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설득 작업에 나섰다.

26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주류업계 전반의 수익 상황도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됐다. 이와 별도로 국세청은 최근 주류업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소주 가격 인상에 대해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방비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소주값까지 오를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가 사실상 인상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정부는 최근 주세를 올렸지만 소주는 영향이 없다. 맥주와 막걸리는 출고량에 비례해 세금이 부과되는 종량세로 영향을 받지만 소주는 출고가가 오르면 세금이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주업체가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세금 인상은 없다.


그럼에도 주류업계는 소주에 들어가는 주정(에탄올)의 주재료인 타피오카 가격 상승으로 소주 출고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주정을 독점 유통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이미 주정 가격을 10년 만에 7.8% 올렸고, 이에 따라 소주 출고가도 덩달아 80원가량 인상됐다. 주류업계는 이번에도 같은 논리로 인상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타피오카의 국제 가격은 지난해 6월 1톤(t)당 540달러에서 이번 달 525달러로 오히려 하락했다.

업계는 소주병 가격 상승도 거론하고 있다. 병을 만드는 업체가 지난달 공용병인 녹색병 가격을 180원에서 220원으로 인상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업체는 새 병뿐 아니라 상당수를 회수해 재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병값 조정 역시 갑작스러운 소주값 인상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2010년 소주업체의 가격 담합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소주 출고가격 인상을 담합한 11개 소주업체에 대해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당시 한 회사가 소주값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비슷한 비율로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담합 행위를 벌였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이번에도 주류업계의 경쟁구도와 독과점 가능성을 살펴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주류업계가 쉽게 출고가를 올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제조사가 만든 소주를 음식점 등에 공급하는 도매업자가 마진율을 높이거나, 음식점 운영자가 재량으로 소주 판매가를 올리는 것까지 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주류 유통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통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부분이 발견된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