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 검증에까지 등장한 학교폭력, 곪아도 너무 곪았다

입력 2023-02-27 04:02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모습. 연합뉴스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취소를 부른 건 자신의 검사 이력이 아니라 자녀의 학교폭력 전력이었다. 정 변호사의 자녀는 유명 자사고에 입학한 2017년 기숙사 방을 함께 쓰는 동료 학우에게 8개월간 학교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강제전학 처분을 당했다. 자녀의 6년 전 학폭 이력이 아버지의 고위공직 임명을 가로막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폭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정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장직 사의를 표하면서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저희 가족 모두가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며 “두고두고 반성하며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 변호사가 아들 정군이 다니던 학교를 상대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이면서 피해자 측에 사과조차 하지 않은 것을 떠올려 보면 진정한 사과인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 신분이었던 정 변호사는 학폭위에 직접 참석해 ‘언어적 폭력은 맥락이 중요하다’며 아들을 감쌌다. 아들의 폭력을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아들의 동급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견디다 못해 학교 측에 신고했다. 1심 재판부였던 춘천지법조차 “가벼운 징계조치인 사과문조차 제대로 쓰지 않고 학교봉사도 법원에 가처분을 제기하는 등 상당한 기간에 걸쳐 학교폭력을 저지르면서 죄의식이 없었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1년여 소송을 끈 아버지 정 변호사의 노력 끝에 정군은 3학년이 돼서야 학교를 옮겼고, 정시를 거쳐 서울대에 합격했다.

학폭 가해자는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던 교육부 정책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정시는 수능 성적 100%로 뽑고, 학폭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대학 측의 재량이기 때문이다. 정군이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정 변호사의 사례에서 보듯 학폭 가해자 배후에는 자식들의 잘못을 감싸기만 하는 사회 지도층 부모가 많다. 내 자식만 좋은 대학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그런 생각이 자녀들에게도 그릇된 영향을 미치고 폭력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화제의 드라마 ‘더글로리’의 인기를 들먹일 것도 없이 학폭은 근절하고 추방해야 한다. 교육부는 피해자 중심의 시각에서 학폭을 엄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피해자는 인생이 망가지는데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면 공정과 정의는 설 곳이 없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에게 나와 생각이 같지 않거나 처지가 다른 친구도 품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학폭이 만연하는데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하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할 학교교육이 위기에 빠질 것이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면 우리 사회 공동체가 무너진다. 공직자 검증 항목에 본인은 물론 자녀의 학폭 여부를 포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