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매운 고추 없나요.”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한 고깃집. 손님 한 명이 매운 고추를 찾자 점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요즘 고추값이 너무 올라서요”라고 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6)씨는 “장사 8년째인데 풋고추, 청양고추값이 이렇게 비싼 적이 없었다. 황당할 정도”라고 말했다.
고추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식당에서 많이 쓰는 청양고추는 1년 새 3배가량 치솟았다. 청양고추가 들어가는 메뉴가 일부 사라지거나 베트남고추 등으로 대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청양고추 가격은 최근 5년간 흐름을 봐도 이례적이다. 2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으로 청양고추 10㎏(상품) 도매가격은 19만7000원에 이르렀다. 1년 전 6만5892원보다 약 200% 뛰었다. 1년간 청양고추 한 상자 가격이 13만원 넘게 오른 셈이다. 1개월 전(9만1695원)과 비교해도 상승 폭이 114.8%나 된다. 한 달 사이에 2.1배가량 올랐다. 최근 일주일 동안에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가격(18만8400원)보다도 4.6% 상승했다.
덩달아 소매가격도 들썩인다. aT에 따르면 청양고추 100g 한 봉지 가격은 전국 평균 2706원이다. 1000원대(1450원)에 판매하는 곳도 드물게 있지만, 전통시장에서도 2500원 안팎이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3330원을 가격표에 붙이고 있다.
청양고추를 핵심 부재료로 쓰는 탕이나 찌개, 국밥 등을 파는 식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강동구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임모(38)씨는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가는 국수를 메뉴판에서 지웠다.
임씨는 “인기 메뉴 중 하나인데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값을 올리자니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한다. 고육지책으로 당분간 메뉴에서 빼기로 했다”고 전했다.
가격 폭등의 첫 번째 이유는 춥고 흐렸던 겨울 날씨다. 파종 때 한파가 겹치고, 주요 산지에서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일조량이 줄었다. 병충해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치솟은 난방비가 결정타를 날렸다.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키우려면 온도를 낮에 25~27도, 밤에 15~17도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겨울엔 난방기를 돌려서 온도를 유지한다. 난방비가 급등하자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했다. 생산량 자체가 줄어든 데다 고추농가의 원가 부담도 커진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는 여러 농가로 분산해서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조금 여력이 있지만, 음식업 장사에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