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봄의 입구에서

입력 2023-02-27 04:07

절기란 얼마나 신묘한 것인지 입춘이 지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이 따뜻해졌다. 아직 일교차가 커서 거리에는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입은 행인들이 눈에 띄지만 표정과 발걸음이 모두 한결 가볍다. 늘 지나다니는 골목의 나무들에도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낮 동안 환한 햇빛을 받으며 머잖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언제나 조금 놀라게 된다. 우리가 사는 곳이 지구라는 행성이며, 이 지구가 거대한 태양을 정말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일까. 우리의 태양계 역시 우주 전체에 비해서는 너무나 미미한 크기이기 때문일까. 지구와 우주의 시간과 구조에 비해 한 인간의 삶은 너무나 짧고 연약하다.

작년에는 산책을 나섰다가 길가에 늘어선 밤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 내게 남은 봄의 개수를 헤아려 보았다. 내 나이를 고려해 봤을 때 앞으로 많아봐야 오십 번 정도의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쏟아지는 햇빛 하나, 거리에 핀 꽃송이 하나 모두 새롭게 소중하다. 지나고 난 뒤에는 오십 일의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지듯 오십 번의 봄 역시 금세 지나가고 말 것이다.

나의 삶 이전에도 지구에는 언제나 봄이 있었고, 앞으로의 지구에도 계속해 봄은 찾아올 것이다. 봄이 오듯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계속될 것이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계절을 감각할 수 있는 몸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꽃송이가 하늘을 뒤덮는 봄도, 푸른 잎들이 가볍게 흔들리는 여름도, 온갖 색으로 화려한 가을도, 세상을 하얗게 지우며 눈이 쌓이는 겨울 역시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며 계속될 것이다.

인간이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문명과 역사가 개별 인간들의 미약함의 총체라는 사실은 언제나 신기하다. 모든 삶과 시간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작은 지구 위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생이 얼마나 짧고 드문 것인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