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자가면역질환자도 OK!… ‘대상포진 사백신’ 도입

입력 2023-02-27 21:19
혈액암 환자 대상 예방효과 87.2%
폐렴구균 등 백신과 함께 접종 가능
발병 고위험 면역저하자 시름 덜어

피부 발진과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대상포진 예방 백신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항암 치료 중이거나 조혈모세포·장기 이식 환자 등 면역 저하자도 맞을 수 있는 백신이 최근 국내에 도입됐다. 게티이미지뱅크·셔터스톡 제공

과거 수두에 걸리거나 수두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은 원인인 ‘바리셀라-조스터 바이러스(VZV)’가 몸에 계속 숨어있다가 나이 들거나 질병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때 활성화돼 대상포진을 겪곤 한다. 대상포진은 물집을 동반한 띠 모양의 피부 발진과 ‘산통’ 보다 더한 통증이 동반돼 큰 고통을 안긴다. 피부 병변이 사라진 후에도 수 주에서 수년간 지속하는 신경통이 만성피로와 수면장애, 식욕부진, 우울증 등으로 이어져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2021년 72만5831명이 이런 대상포진으로 병원을 찾았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전체의 63% 정도를 차지했다.

수년 전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상포진 예방백신이 국내에 허가받아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MSD의 조스타박스)와 국내 제약사(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 2개 제품이다. 그런데 항암치료 중인 암 환자나 조혈모세포(골수) 및 장기이식 환자, HIV감염인,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자가면역질환자 등 이른바 면역 저하자들은 두 가지 백신을 맞을 수 없다. 해당 백신이 ‘약독화 생백신’이기 때문이다. 이는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일부분을 변형시켜 자기 번식 및 면역 유발 능력은 있으나 독성을 유발하는 능력은 제거한 백신이다. 독성을 약화했지만 살아있는 바이러스인 만큼 면역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체내에서 증식하거나 해서 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이 때문에 선천적 혹은 후천적 면역결핍 상태에 있거나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면역억제 치료를 받는 이들에게는 생백신의 접종이 금기로 돼 있다.

면역 저하자의 대상포진 발병 위험은 일반인과 비교해 높다. 발병 부위가 더 많고 넓으며 오랜 기간 지속된다. 물집이 혈액으로 가득 차는 ‘출혈성 대상포진’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포함해 바이러스혈증, 폐렴, 간염 등 합병증 발생과 재발 우려도 높다.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는 27일 “대상포진의 주요 발병 요인은 면역력 저하로, 50세가 넘거나 면역저하를 일으키는 기저질환이 동반된 경우 바이러스의 재활성을 억제하는 면역세포 기능이 떨어져 대상포진 발생과 중증도를 높인다”면서 “조혈모세포이식 환자의 대상포진 발병률은 만18세 이상 일반인과 비교해 약 9배 높고 암이나 HIV감염인, 류머티즘성질환자 등도 3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면역 저하자도 맞을 수 있는 대상포진 사백신(GSK의 싱그릭스)이 국내 처음 도입돼 당사자들이 걱정을 덜게 됐다.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사백신은 바이러스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화학물질이나 열을 이용해 불활성화시킨 것이다. 불활성화 백신은 바이러스가 살아있지 않으며 증식할 수도 없다. 면역이 결핍된 사람에게도 질병을 일으키지 않아 접종이 가능하다. 다만 여러 번 투여가 필요하다. 이번에 출시된 사백신도 2개월 간격으로 두 번 맞아야 한다. 기존 생백신은 한 차례만 접종한다.

제약사 측은 만18세 이상 등 다양한 면역저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5건의 임상시험을 통해 면역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고 규제당국 승인을 받았다. 특히 항암치료 중인 혈액암 환자 대상에선 대상포진 예방 효과가 87.2%로 나타났다. 50세 이상 일반인 대상 임상시험에선 예방 효과가 97.2%로 더 높았다. 기존 생백신의 대상포진 예방 및 통증 감소 효과는 50~60% 선이다. 또 최근 추가로 진행된 연구 결과 이런 예방 효과는 2차 접종 후 10년까지 89%로 장기간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미국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는 2018년 사백신을 50세 이상 성인 및 기존 생백신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접종을 권고한데 이어 2021년 면역 저하 또는 면역억제 치료를 받는 성인도 접종군에 추가했다”면서 “국내 면역 저하자 대상포진 예방에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암 유병자는 228만명으로, 매년 20만명 이상 꾸준히 느는 추세다. 항암치료 중인 암 환자는 대상포진 위험이 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윤 교수는 “대상포진은 일생동안 3명 중 1명은 발병할 수 있는 대상자가 많은 질환”이라며 “이제는 일반인은 물론 면역 저하자들도 백신 접종이 가능해진 만큼 예방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상포진 사백신은 다른 불활성화 계절독감, 폐렴구균, Td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백신 등과 함께 맞을 수 있다. 다만 접종 부위는 달리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과도 동시 접종을 고려할 수 있다. 제약사 관계자는 “생백신과 생백신은 4주 이상 간격을 둬야 하지만 사백신과 생백신, 사백신과 사백신은 동시 접종해도 항체 감소나 이상 반응 빈도가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