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인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음주의 ‘2차(간접) 폐해’는 비음주자의 건강 보호와 삶의 질 차원을 넘어 사회 안전의 문제입니다.”
제갈정 이화여대 임상바이오헬스대학원 교수는 27일 “일상에서 음주로 인한 2차 폐해를 적지않게 경험하고 있으나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 역시 높지 않다”며 “술 마시고 고성방가하는 것을 폐해라고 생각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음주의 2차 폐해는 음주자 탓에 음주하지 않은 사람(혹은 제3자)이 겪는 부정적 영향을 지칭한다. 음주로 빚어진 교통사고나 범죄, 폭력·성폭력, 공공장소에서의 소란·무질서·기물파손, 가정폭력·아동학대·자녀방임 등이 포함된다. 직장내 잦은 결근, 근무태만 등도 해당된다. 제갈 교수는 “임신·수유 중 부모의 음주로 기형아가 태어나거나 아이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면 이 또한 2차 폐해”라고 설명했다.
2017년 질병관리청과 인제대의 ‘국민의 음주행태 심층조사’ 연구에 따르면 지인의 음주에 의한 간접폐해 경험은 24.1%(남자 30%·여자 18%), 초면인 타인에 의한 폐해 경험도 25.6%(남자 33.3%·여자 17.9%)로 나타났다. 2021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선 타인의 음주로 인한 간접폐해 경험률이 남자 청소년(29.3%) 보다 여자 청소년(61.6%)이 배 이상 높았다.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약물 유해성 평가’ 연구논문(2010년)에 의하면 알코올의 간접폐해 점수가 다른 중독성 약물(헤로인·크랙코카인·담배·칸나비스 등) 보다도 높았다. 이에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간접음주폐해를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루도록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 태국 등 일부 국가는 간접폐해 관련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제갈 교수는 “금연이 우리 사회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것도 간접흡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연지원사업이 확장됐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음주의 2차 폐해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노력이 강화되고 국민 인식 또한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음주의 2차 폐해에 대한 근거 확보를 위해 국가가 수행하는 조사(국민건강영양조사·지역사회건강조사·청소년행태조사 등)에 관련 항목을 보다 늘리고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