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12항의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평화 회담’과 ‘전후 재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왕이 중국 정치국원은 독일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계기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왕이는 러시아로 이동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면담을 이어갔고 그 직후 입장문을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모호한 ‘중립’을 표방하면서 사실상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중국은 왜 이 시점에 평화 중재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중국의 중재 역할은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중국이 제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 해결’은 기존 입장을 종합한 것으로 새로운 해법이라 보기는 어렵다. 12항에 달하는 긴 입장문이지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담고 있지도 않다. 중국 스스로 ‘최대공약수’라고 했듯 주요 관련국의 상이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집약해 놓았다.
요컨대 유럽의 우려를 고려해 핵 사용 금지를 제시했고, 우크라이나를 의식해 주권과 영토 보전의 보장을, 그리고 일방적 제재의 중단을 주장하면서 러시아 입장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을 겨냥해선 냉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중재안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에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하려 한다는 경고를 보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평화회담보다는 여전히 결전 의지를 밝히고 있어 사실상 중국의 중재 역할은 실효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현실성이 높지 않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일까. 중국이 제시한 입장문의 행간에는 오히려 중국의 딜레마와 전략적 고민이 읽힌다. 우선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가 기대하는 수준의 확고한 지지 표명이나 군사 지원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이다.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사실상 나토의 아시아로의 확장 시도이고 이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러시아 침공을 비난하지 않고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를 이어가는 까닭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을 벗어나 장기화되고 확전될 가능성마저 제기되면서 중국이 원론적이고 모호한 입장만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다. 특히 중국은 대만 문제는 내정이고 주권 사항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주권 수호의 원칙은 경시할 수 없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주권과 영토 존중이라는 중국 외교의 핵심 원칙을 훼손할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이 실효성 없는 중재자 역할을 표명하고 나선 데는 수세적 위치에서 탈피하고 딜레마 국면을 전환해보려는 의도도 있다. 시진핑 3기 출범 이후 중국은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 확대를 향한 탐색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은 이른바 평화회담을 제안하면서 미국과 차별화해 평화와 대화를 견인하고자 한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부각시켜 보려 한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은 구체적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실질적 중재자 역할도 못하면서 자국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취약한 강국이라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동률(동덕여대 교수·중어중국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