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계기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에게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을 지키라고 압박했고, 정의당도 국회가 특권을 내려놔야 한다며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해 ‘가결’ 입장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불체포특권 포기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이 대표 측은 검찰의 야당 탄압을 묵과할 수 없다면서 “지금이야말로 반드시 불체포특권을 행사해 민주당을 지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헌법에 명시됐지만…‘방탄국회’ 악용도
불체포특권은 삼권분립을 보장하기 위해 1948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도입됐다. 현재도 헌법 제44조에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이 회기 중 국회의원을 체포 또는 구금하기 위해 국회에 동의를 구하면 국회는 본회의에서 무기명 표결에 부쳐 가부를 정한다. 체포동의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이후 법원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기일이 정해진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영장은 그대로 기각된다.
불체포특권은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불합리한 탄압으로부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입법부가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범죄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편법적으로 보호하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부정·비리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까지 부결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방탄용’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정치개혁의 주요 내용으로 불체포특권 폐지 혹은 개선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1948년 이후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은 모두 67건이다. 이 중 ‘부결’이 17건(25.4%), ‘가결’은 16건(23.9%)이었다. 33건은 철회됐거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27일 표결 예정이다.
‘방탄국회’라는 말이 처음 나온 건 15대 국회(1996~2000년)다. 1998년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를 받은 이신행·서상목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수차례 임시국회를 열면서 방탄 논란이 제기됐다. 15대 국회에선 12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지만 단 한 건도 가결되지 않았다.
역대 가장 많은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건 16대 국회(2000~2004년)다. 15건이 제출돼 부결 7건, 폐기 6건, 철회 2건, 가결 0건으로 마무리됐다. 19~20대 국회(2012~2020년)를 합쳐선 총 16건 가운데 3건만 가결됐다.
21대 국회에선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포함해 5건이 제출됐는데, 이 중 3건이 가결된 것이다. 2020년 정정순 민주당 의원(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과 2021년 이상직 무소속 의원(횡령·배임),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뇌물수수)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고 이들 모두 구속됐다. 다만 지난해 12월 노웅래 민주당 의원(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도 다수당인 민주당은 부결을 확신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치지 않고 해당 의원이 영장실질심사에 응한 사례도 있다. 20대 국회(2016~2020년) 때 권성동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강원랜드 부정청탁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가 체포동의안이 제출되자 비회기 중 자진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특권 포기’ 약속하고 선거 끝나면 외면
큰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불체포특권 포기나 제한을 약속해놓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기 일쑤였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는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했지만 집권 이후엔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후보도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공약을 냈지만, 그의 승리가 확실시됐던 2017년 대선에선 이 공약을 내지 않았다.
이 대표도 지난해 대선 때 중대범죄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12일 기자회견에선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유사한 헌법 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은 국회법으로 불체포특권을 제한한다. 독일도 공동정범, 범죄 후 은닉자 등에 대해선 불체포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국 역시 1967년 의회 특권특별위원회의 폐지 권고 이후 특권을 약화시켜 왔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불체포특권은 군사정권의 유물일 뿐 민주주의 수준이 발전한 현재에는 맞지 않는다”며 “이번에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은 회기 중이라도 영장이 청구되면 고민 없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국민들도 이에 대부분 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부당한 권력과 투쟁하라는 뜻으로 만든 건데 정쟁의 도구로 남용돼 왔다”면서도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국회의원을 위해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불체포특권 논란 해소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악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국회 내 관행이나 내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여야 합의로 국회 운영세칙에 ‘체포동의안은 당론으로 표결하지 않는다’ 같은 규범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