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 엘리노어
이렇게 조용한 지구를 상상해본 적 있어?
인쇄된 글자처럼 쓸쓸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 늦게 전해지는 건지도 몰라
손바닥만 따뜻해지는 불 앞에 모여 앉아서
가늠되지 않는 오후 속에서
후, 후 숨 쉬는 연습을 하고 있어
재를 터는 것처럼
뜨거운 것을 부는 것처럼
열기가 불행을 미뤄주는 것처럼
우리가 잠깐 잡았던 손처럼
끝난 것의 끝을 기다리면서
오래 헤어지는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중략)
엘리노어,
너는 미래의 시간에 살고
나는 과거의 빛을 보지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어떤 말들은 이제 알 것 같다
오늘도 전철이 지나가
같은 시간에
너의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짓는 어른이 될까
엘리노어, 아직 보고 있어?
-조시현 시집 ‘아이들 타임’ 중
이 시의 SF적 분위기는 각주를 보면 이해가 된다. “2888년 지구에서 발견된 일기장으로 2500년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2500년대에 이 글을 쓴 이는 원시인처럼 모닥불을 피워놓고 우주로 떠난 친구에게 말을 건다. 그는 지구에 남은 거의 마지막 인간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