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새벽 5시, 충남 논산시 부적면 일대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김종원(63)씨의 딸기 비닐하우스에 조명이 켜졌다. ‘새벽딸기’를 수확하는 김씨는 손수레를 끌며 빨갛게 익은 열매를 골랐다. 하우스 양쪽 끝의 딸기를 수확할 때 이마에 헤드라이트를 켰다. 하우스 내부에 환한 백열등이 있지만, 구석진 자리에선 동 트기 전에는 딸기가 얼마나 익었는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타베리’ 품종은 일반적으로 90% 정도 익었을 때 수확하지만, 김씨가 손에 든 딸기는 모두 95% 이상 숙성돼 꼭지 끝까지 빈틈없이 빨갛게 물들었다.
롯데마트는 새벽딸기 판매처를 전체 점포로 확대했다. 충남 논산, 전남 담양 등의 산지에서 새벽에 수확한 딸기를 당일 오후 2시 이후 전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게 새벽딸기다. 기온이 따뜻해져 과육이 쉽게 짓무르는 3~5월에 최대한 신선한 과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온도가 낮아 과실이 단단한 새벽에 수확하고, 유통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신선도를 극대화했다. 과일은 보통 유통·판매 과정에서 불가피한 후숙을 겪는다. 이 때문에 덜 익었을 때 수확하지만 새벽딸기는 그런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김씨가 숙기 95% 이상의 당도 높은 딸기를 수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시간 밖에 못 잤다는 김씨 얼굴에는 피곤함 대신 즐거움이 가득했다. 새벽딸기 수확은 이르면 새벽 2시30분부터 시작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김씨는 “새벽딸기는 일반 딸기보다 값을 1㎏에 500~1000원 정도를 더 쳐주지만, 그 돈 받으려고 할 짓이 못된다”면서 “소비자에게 최상의 딸기를 제공한다는 보람으로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빈 속에 믹스커피를 마시며 일하던 김씨의 아내는 “단단하던 딸기가 해가 뜨고 나면 물러져 니트릴장갑을 껴도 끈적끈적하게 느껴진다”며 과일 따는 손을 재촉했다.
수확한 딸기는 30분쯤 차를 타고 선별센터로 옮겨진다. 센터 안에 들어서면 작업자 53명이 줄지어 앉아 선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전 8시쯤, 전날 저녁의 재고 작업이 끝나고 새벽딸기 작업이 시작되자 손길이 한층 빨라졌다. 두 손을 이용해 새벽딸기를 조심스럽게 스티로폼 상자에 담았다.
새벽딸기는 선별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팩에 일렬로 줄을 맞춰 담는 ‘줄작업’을 하지 않는다. 질서없이 ‘벌크’ 방식으로 담는다. 줄작업을 하면 2시간에 1㎏짜리 상자 4000개를 작업할 수 있다. 벌크로 담으면 작업시간을 2~2.5배 단축할 수 있다. 작업자의 손이 딸기에 닿는 시간이 짧아져 신선도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딸기 포장지엔 QR코드가 그려져 있었다. 올해 새로 바뀐 디자인이다. 새벽딸기가 실제로 그날 새벽에 수확된다는 걸 믿지 못했던 롯데마트 신선부문장이 의견을 냈다고 한다. 신선식품 판매를 총괄하는 임원조차 실무자에게 “새벽딸기를 진짜로 오늘 딴 게 맞느냐”고 거듭 물었고, 결국 딸기 담당인 신한솔 과일팀 MD가 수확하는 모습을 찍어 보여줬다. 부문장은 그제야 의심을 거두며 QR코드 포장지를 제안했다. 포장지의 QR코드를 스캔하자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딸기를 수확하는 산지 농가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재생됐다.
포장을 마친 딸기는 1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 오산 물류센터로 이동한다. 마트에서 취급하는 대부분 식품은 야간에 이곳으로 입고돼 9시간쯤 머물다 각 점포로 출발한다. 반면 새벽딸기는 오전 11시에 입고돼 수량 확인, 매입, 배분을 끝내고 차에 실린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밤 시간대엔 3000평의 센터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상품이 몰리지만, 낮에는 새벽딸기만 작업해서다.
오산 물류센터에선 수도권 및 충청권 점포에만 물건을 공급한다. 주간에 이용가능한 물류센터가 없는 영남·호남 및 제주까지 새벽딸기를 확대하기 위해 신 MD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2~3번 출장을 다녔다. 점포로 딸기를 직납할 산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1박2일 출장 한번에 이동거리는 800~1000㎞에 달했다. 전라도는 물론 경남 진주시까지 좋은 딸기가 있다는 곳은 모두 찾아갔다. 힘든 새벽딸기 일을 거절하는 농가가 많아 같은 곳을 서너번 방문하기도 했다. 높은 매입가를 제시하는 대신 좋은 상품을 좋은 품질로 판매한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가격으로는 그 고생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새벽딸기가 각 점포에 진열되는 오후 2시. 새벽딸기 상자가 롯데마트 서울 서초점 매대에 오르자 몇 분 뒤 고객들이 모여들었다. 아들과 함께 마트를 찾은 류지민(48)씨는 8개 종류의 딸기 중 새벽딸기인 ‘금실’과 ‘비타베리’를 들고 번갈아 봤다. 결국 류씨의 카트엔 금실 1상자, 비타베리 2상자가 자리를 잡았다. 일부러 새벽딸기를 고른 거냐는 질문에 그는 “새벽딸기가 뭐냐. 눈으로 보기에 하얀 부분이 적고 단단해 보이는 딸기를 골랐다”고 답했다. 충분히 신선한 다른 딸기들 옆에서 새벽딸기는 마치 모형처럼 보일 만큼 빨갛고 반짝였다.
매입가격이 비싸고 인건비도 많이 드는 새벽딸기지만, 판매 가격은 일반 딸기와 같다. 그렇다고 롯데마트가 손해를 보고 파는 건 아니다. 원가가 높은 대신 빠르게 팔려 폐기율이 낮아서다. 새벽딸기가 조금이라도 늦게 진열되는 날엔 언제 들어오냐는 고객 문의가 수차례 들어온다고 한다. 새벽딸기의 지난해 성적표는 ‘불만 건수 0건’. 일반 딸기의 경우 매년 3~5월 고객으로부터 평균 20~30건의 불만이 접수된다. 대부분은 딸기가 짓물렀다는 내용이다. 롯데마트의 ‘초신선 전략’이 저장성이 낮은 딸기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롯데마트는 빠른 배송으로 마트를 위협하는 새벽배송 이커머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프라인 대형마트만이 제공할 수 있는 초신선을 내세우고 있다. 여러 유통 과정을 거쳐야하는 이커머스와 차별화한 것이다. 신 MD는 “농가의 신선함을 매장에서 고객들이 바로 느낄 수 있도록 ‘초신선’ 품목을 지속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논산·오산=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