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구로구의 한 경로당 문을 열자 훈훈한 공기가 훅 밀려왔다. 경로당 실내는 가동되는 보일러와 수육을 삶는 열기로 훈훈하게 데워져 있었다. 경로당에 모인 노인 10여명은 얇은 블라우스와 니트의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바깥은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실내 온도는 28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급등한 난방비에 노인들이 싸늘한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로 경로당행을 택하고 있다. 난방비 부담에 집의 보일러는 끄거나 온도를 낮추고, 대신 경로당으로 와 여럿이서 따뜻하게 지내는 ‘웜 셰어’(Warm share·온기 나누기)에 나선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웜 셰어’ 캠페인은 집안 전원을 끄고 백화점 등 쇼핑센터를 방문해 따뜻한 시간을 보내자는 운동으로, 일본에서도 난방비가 가계에 짐이 될 만큼 뛰어오르면서 등장했다.
구로구의 다른 경로당에서 만난 오명달(71)씨는 “요즘은 집에서 보일러를 틀기가 아까우니까 어르신들이 더 일찍 경로당에 나온다”며 “전에는 낮이면 밖에서 좀 놀다가 경로당에 오곤 했는데, 요즘은 오전 10시만 돼도 대부분 경로당에 모인다”고 말했다.
하루에 10명 안팎이 찾던 서울 양천구의 한 경로당도 최근에는 하루 20여명씩 찾아오는 등 방문자가 늘었다고 한다. 경로당에 더 일찍 와서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고령층의 난방비 부담 때문이었다. 안계로(86)씨는 “지난해에는 월 3만원 정도이던 난방비가 올해는 7만원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크게 오른 난방비 요금은 더욱 부담하기 버겁다는 것이다.
특히 경로당을 찾는 노인은 대부분 집에서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혼자 머물며 난방을 켜기 부담스러워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조모(78)씨는 “종일 집에서 따뜻하게 난방을 트는 건 아까운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씨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노인들도 “집에 혼자 있는데 난방하는 건 얼마나 낭비냐”고 거들었다.
경로당 노인들은 “여럿이 모여 있으면 더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경로당 특성상 집보다 온도를 더 낮게 해놔도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양천구 경로당에서 만난 한 노인은 “우리도 염치가 있어서 (경로당) 난방 온도를 10도 정도 낮춰서 설정한다”며 “처음엔 조금 썰렁해도 모여 있으면 따뜻하니까 비용을 아끼면서 난방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웜 셰어’를 증명하듯 회원제로 운영되는 경로당에도 이번 겨울 들어 가입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구로구의 한 경로당은 올해 신규 회원 3명을 더 받았다. 최근 2명이 더 회원 가입 희망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경로당 회장은 “이미 회원이 많이 늘어나서 1인당 1만원도 안 되는 운영비로 경로당을 유지하고 있다”며 “당분간은 회원을 더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