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섰다.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겨울철 방어가 있었다. 방송인 한혜진은 말했다.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몸밖에 없더라고요. 일도 사랑도 제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데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몸이에요, 몸.” 문제는 그 의지를 다잡기가 힘들다는 거다. 방어 같은 몸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20여년 전부터 계속하고 있지만 몸도 일이나 사랑과 마찬가지로 전혀 컨트롤되지 않았다. 2019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다이어트 실패 경험이 있었다. 10명 중 9명은 ‘몸 컨트롤 불가론’에 공감하겠지.
그래서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 열광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마련이니까. 여기에는 완벽에 가까운 몸을 소유한 100명의 플레이어가 나온다. 스포츠 국가대표, 격투기 선수, 보디빌더, 산악구조대, 소방관, 교도관, 댄서, 특전사, 크로스핏 선수 등 출신도 다양하다. 그들은 몸으로 격돌해 최후의 1인을 가린다. ‘피지컬: 100’의 기획자는 1화 맨 앞부분에서 매우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인간의 몸은 거짓을 얘기하지 않는다. 스스로 쓴 역사이자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배를 만졌다. 그동안 난 어떤 역사를 써온 것인가.
영상은 100개의 석고 ‘토르소’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플레이어 100명의 몸을 형상화한 것이다. 탈락자는 자신의 토르소를 망치로 깨부수고 퇴장한다. 플레이어들은 조각 같은 몸을 갖고 있었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승부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이변이 속출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인물 가운데 ‘톱5’에 남은 건 자동차딜러 조진형 정도였다. 우승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크로스핏 선수 우진용이 차지했다.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게 단순히 피지컬 경쟁 같지는 않다는 거였다. 장르, 내용, 제작진, 출연진 어느 하나 닮은 게 없지만 ‘피지컬: 100’을 보면서 떠오른 건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인생작이었다. 20여년 전에 만화책으로 봤던 내용에서 크게 새로운 건 없었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팔을 들 힘조차 없는 정대만이 연달아 3점 슛을 성공시키며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울컥했다.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을 살리려다 등을 크게 다친 강백호가 감독에게 “계속 뛰게 해 달라”며 그 유명한 대사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지? 나는… 나는 지금이라고요!”를 외치는 장면에선 펑펑 울었다.
북산고가 턱밑까지 추격하자 산왕공고 감독은 간절한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주문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턴 마음의 승부다. 얼마나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자신을 믿고 플레이할 수 있는지. 얼마나 갖은 고초를 헤쳐 왔는지를 생각해라.” 슬램덩크가 내내 얘기하고 있는 건 이거였다. 프로 세계에서 결정적 순간에 승부를 가르는 건 판단력, 평정심, 끈기, 도전, 의지 등을 합친 ‘멘털’이라는 것. ‘피지컬: 100’ 역시 단순히 육체의 경쟁을 넘어 투지, 근성, 지혜, 리더십 등을 겨룬 다큐멘터리였다.
탈락자가 자신의 석고 토르소를 깨부술 때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윗)상이 떠올랐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명중시켜 죽이는 성경 속 에피소드를 바탕에 둔 조각상이다. 골리앗은 키가 2m90㎝에 달하는 압도적 피지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거인을 소년 다윗은 신념과 돌멩이 다섯 개로 이겼다. 무엇이 됐든 의지를 갖고 끈기 있게 도전해 보자.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니까. 난 옆에 있던 과자부터 저리 치워 버렸다.
이용상 산업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