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 ‘호모 픽투스’다. 이야기는 사회를 만들고, 인간의 삶에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스토리텔링의 미덕을 칭송하는 이 시대에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갓셜은 서사에 대해 세상을 이해하는 주된 연장인 동시에 위험한 헛소리를 지어내는 주된 연장이라고 지적했다.
편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감적 스토리텔링은 편견을 극복하는 회선의 연장 중 하나”라면서도 “편견을 조장하고 살을 붙이고 전파하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강력할수록 우리는 주인공에 깊이 이입하고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설득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인구가 전 세계의 31.5%를 차지하게 된 것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줄어든 것도 모두 이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이야기의 긍정적인 힘과 함께 스토리텔링의 치명적인 독에 대해 말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다면 인간은 신중한 판단과 논증이 없이도 정보와 믿음을 주입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날 문명이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갓셜은 이 위기의 해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이야기를 증오하고 거부하라. 하지만 이야기꾼을 증오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평화와 자신의 영혼을 위해, 이야기에 말 그대로 반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자들을 경멸하지 말라.”
저자는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 밑에서 연구했다. 워싱턴·제퍼슨대 영문학과 연구원인 그는 과학적 인문학 운동의 선두주자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갓셜에 대해 “탁월한 젊은 학자다. 그의 저작은 명료함과 재치, 흥미를 두루 갖췄다”고 평했다.
갓셜의 대표적인 저서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뉴욕타임스(NYT) ‘편집자의 선택’에 뽑혔고 국내에도 번역돼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 ‘동굴 속 교수’ ‘트로이의 강간’ ‘문학, 과학 그리고 새로운 인문학’ ‘진화, 문학 그리고 영화’ 등의 책을 썼다. 과학과 문학을 접목한 그의 연구는 미국 주요 매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