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성추행·산재·결혼사기… 2000년대 이주노동자 보고서

입력 2023-02-23 20:47

한윤수(75) 소장은 나이 육십에 목사 안수를 받고 2007년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은 경기도 화성에서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운영해 왔다. 2008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상담 일지를 토대로 매주 두 편 이상씩 글을 써서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연재했다. 연재는 도중에 끝났지만 한 소장의 기록은 2018년까지 10년간 이어졌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장기적인 작업이었다. 이 기록들이 ‘오랑캐꽃이 핀다’(사진)는 제목의 10권짜리 책으로 출간됐다. 짧으면 한두 페이지, 길면 대여섯 페이지 분량의 글 895편이 묶였다. 마지막 10권은 이번 출간 작업을 기획한 홍윤기 전 동국대 철학과 교수가 한 소장의 기록 작업에 대해 쓴 해설문이다.

2008년 11월에 쓴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몽골 노동자 샤카. 사장은 잠적했고, 그는 밀린 월급을 못 받았다. 기숙사에 전기도 끊겼다. 다른 곳에 취업을 해야 밥이라도 먹을 텐데, 이직을 하려면 노동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 소장은 이 사정을 기록했다. 2018년 3월에 기록된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은 ‘국제결혼 사기’다. 한국 남성과 결혼시켜준다고 약속하고 500만원을 받은 후 잠적한 국내 브로커를 탐정까지 고용해 찾아낸 후 떼인 돈을 받아줬다는 사연이다.

한 소장은 그렇게 이주 노동자 수백 명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월급 떼인 이야기, 퇴직금 못 받은 이야기, 폭행 당하고 성추행 당한 이야기, 산재 이야기, 부당 해고 이야기…. 그 기록들이 모여 2000년대 한국 이주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한 보고서가 되었다.

한 소장은 출판사를 운영하던 젊은 시절 전국 야학교에 다니는 10대 노동자들의 생활담과 일기를 모은 문집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1980년)을 출간했다. 그는 30년이 흘러 센터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착취와 고통이 만연한 당시의 노동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