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손모(21)씨는 지난 20일 2.5t 이삿짐 트럭에 홀로서기의 흔적들이 가득한 세간살이를 실었다. 이날 손씨는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던 수원의 생애 첫 자취방을 떠나 다시 서울로 이사했다. 두 번째 대학교 신입생 생활을 위해서였다.
그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에 2021년 경기도 한 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었다. 자립준비청년의 대학 진학률이 62.8%(2021년 기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원하는 진로를 찾아 수도권 대학에 입학한 손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되자 한 학기 만에 휴학을 결심했다. 이후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결국 다시 대입을 준비한 끝에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대학교 실내건축학과에 합격했다.
처음 독립해 자취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짐은 단출했다. 상자 6개였던 짐은 1년 만에 26개 상자로 불어났다. 하지만 손씨는 지인들도 부르지 않고 이삿짐센터 직원 두 명과 함께 이사를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는 게 익숙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에서 벗어나 서울의 한 그룹홈에 입소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체벌은 점점 주먹과 발이 동원된 폭력이 됐고, 이를 견디다 못해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시설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왜 우리 집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며 “어릴 때부터 나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든 걸 혼자 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설에 머물게 된 뒤에도, 성인이 돼 시설을 나서야 했을 때도 ‘도움을 줄 어른’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인생의 주요한 길목마다 어른과 주변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을 만난다. 모든 걸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한 손씨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하는 이사 역시 버거웠다. 두 번째 독립이었는데도 자립준비청년에게 제공되는 임대주택 혜택 관련 정보를 한눈에 찾기란 쉽지 않았다. 손씨가 구한 집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미리 확보해 자립준비청년에게 임대를 하는 매립임대 방식의 주택이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주는 주거 혜택은 너무 좋은데, 문제는 그런 정보를 구하지 못해 미리 계획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아쉬워했다. 1년에 1~2회가량 입주자 모집을 하기 때문에, 사전 정보가 없어 모집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5만원의 이사비용도 홀로서기를 하는 자립준비청년으로선 큰 부담이었다고 했다. 이사를 할 때 정산해야 하는 각종 공과금 처리도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하나하나 배웠다. 손씨는 “이미 퇴소한 입장에서 자꾸 시설에 연락드리기가 죄송해서 혼자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는 편”이라며 “어려울 때마다 주변에 ‘어른이 없다’는 게 크게 와닿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와줄 어른’이 없다 보니 대학 합격이 취소될 뻔한 일도 있었다. 자립준비청년은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이지만, 대학 합격 발표 시기가 1차 국가장학금 신청 시기보다 늦어지면서 2차 국가장학금을 신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2차 국가장학금은 등록금 납부 마감 시한 이후에나 들어오는 일정이어서, 먼저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다. 부모 도움을 받을 수도 없던 그가 500만원가량 되는 거액을 급히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지역 주민센터와 대학교 입학팀 등에 전화를 돌렸고, 결국 자립전담요원의 도움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손씨는 “학자금 대출로 미리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대학 입학이 취소될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정보를 한데 모아서 편히 볼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하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2시간쯤 걸려 이삿짐을 트럭에 실은 뒤 그는 원룸 벽면에 붙은 메모들을 만지작거렸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글들이었다. ‘금, 토, 일 아침 독서’ ‘매일 블로그 글 업로드’ 등이 적힌 메모를 떼는 손씨의 얼굴은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시설에서 나와 했던 첫 자취였고 모든 게 처음이라 더 특별했다”며 “새집에 가서는 또 새로운 목표를 써 붙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인 새내기 박모(19)씨도 다음 달 전남의 한 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한다. 박씨는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하다 집을 나와 그룹홈에서 지냈다. 대학 합격은 기쁨이었지만, 당장 목포에 있는 그룹홈에서 영암에 있는 학교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오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걱정이 들었다. 하루 왕복 6000원의 교통비도 부담이었다. 대학 생활에 필요한 식비나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비용이 부담돼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기숙사에 합격했지만, 자립준비청년에게 지원되는 등록금 외에 기숙사비나 대학 교재 등은 대부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는 성인이 돼 맞을 미래가 기대된다고 했다. 박씨는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 도움으로 대학에 가고 진로도 정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 혼자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할까’ 걱정이 컸다”며 “지금은 열심히 대학교에 다니면서 진짜 내 꿈도 정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수원=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