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가슴 아픈 이별의 연속… 우크라 소녀의 일기

입력 2023-02-23 20:46
전쟁이 시작된 날부터 일기를 써온 우크라이나의 열두 살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와 할머니. 생각의힘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됐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에 인접한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폭격이 시작됐다.

“새벽 5시 10분. 쨍쨍 울리는 커다란 금속음에 갑자기 잠에서 깼다… 갑자기 거대한 로켓이 집을 스치더니 무시무시하게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그 순간 내 심장은 얼어붙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르키우의 멋진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열두 살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는 그렇게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예바는 전쟁이 시작된 그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폭격을 피해 대피한 지하실에서도, 고향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도, 낯선 도시와 국가에 도착해서도 일기를 썼다. 예바는 “종이 위에 내 감정을 적어 내려가면 끔찍한 상황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에 내 어린 시절이 전쟁으로 어떻게 망가졌는지 돌아보고 기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일기 쓴 이유를 설명했다.

예바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였다. 전쟁 첫 날은 지하 대피실에서 지내야 했다. “다섯 시간을 지하에 갇혀 있고 난 지금 모든 게 다르게 보인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전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바뀌었다.”

둘째 날이 되자 집을 떠나야 했다. 하르키우 서쪽 노바 바바리야라는 동네에 있는 할머니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 며칠을 지낸 후 옆 도시 드니프로로 넘어갔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의 서쪽 끝 우즈호로드로 이동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갔다가 전쟁 16일째가 되는 3월 11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망명했다.

예바는 4월 1일 더블린의 학교에 처음 등교했다. 그는 “모두 날 환영했고 다들 친절했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난민’이라는 단어를 견디는 게 힘들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고 속마음을 적었다. “속으로는 부끄러웠다. 왜 부끄러웠는지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 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창피하다.”

이 여정을 기록한 예바의 일기는 아이들이 겪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여준다. 예바는 피난 속에서도 학교 친구들과 채팅방이나 전화를 통해 계속 얘기를 나눈다. 3월 8일의 일기는 “나와 같은 학년인 아이들은 대부분 하르키우를 떠났다. 폴리나는 독일로, 마리나는 중앙 우크라이나의 크레멘추로, 키릴로는 폴란드 국경으로 갔다”고 전한다.

“전쟁이 우리를 세계 각지로 흩어 놓았다”고 예바는 썼다. 전쟁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일깨운다. 책 뒷 부분에는 예바의 학교 친구들이 쓴 이야기도 실려 있다. 전쟁은 주로 살육과 파괴, 공포 같은 단어들로 묘사되지만 아이들이 경험하는 전쟁은 이별이다. 정든 집을 떠나는 것,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이다.

그림은 이 두 가족의 피난 경로다. 우크라이나 북동쪽 러시아와 인접한 하르키우의 집을 떠나 서쪽 끝 우즈호로드까지 이동했고, 거기서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갔다가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망명했다. 생각의힘 제공

전쟁이 일어나고 43일 만에 하르키우를 떠난 예바의 친구 크리스티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중 일부인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도 하르키우에 있다. 그들이 너무 그립고, 그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 알레나는 전쟁에 징집당한 삼촌과 이별해야 했다. “이모는 오열했고 이제 막 제대한 오빠는 자기도 삼촌과 함께 갈 거라고 했다. 삼촌은 오빠에게 남아서 가족을 지키라고 말한 뒤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작별을 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오빠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렇게 강하고 우직한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다니!”

전쟁 속에서 일기를 적어온 예바의 이야기는 영국의 지상파 방송국 채널4 기자들에 의해 발견돼 보도되고 출판에 이르게 됐다. 한국어판 번역은 청소년 소설 ‘아몬드’의 작가로 유명한 손원평이 맡았다. 이 책은 손원평의 첫 번역작이다. 그는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평생 전쟁을 겪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이 나를 이 글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예바의 일기는 전쟁과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야말로 전쟁이 초래하는 최대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보다 더 강력한 반전 메시지는 없을지 모른다.

예바가 글을 써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것인지 모른다. 이 전쟁 속에 아이들이 있다고, 그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난 이 글을 이렇게 마치고 싶다. 우린 아직 아이들이라고, 그러므로 우린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