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노란봉투법·횡제세법… ‘입법 무능’에 산업 ‘발목’

입력 2023-02-23 00:04
국민일보DB

‘K칩스법’ ‘노란봉투법’ ‘횡재세법’…. 국회와 행정부의 ‘입법 무능’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중 패권다툼, 공급망 재편으로 기업들은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하지만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법안은 정치권 대립으로 표류 중이다. 심지어 갈등에 갈등을 다시 덧붙이기까지 한다. 정책 지원사격이 늦어지면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안보자산’으로 급부상한 반도체를 지원하는 ‘K칩스법’은 7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K칩스법의 2개 축 중 하나인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은 지난달 19일 정부 발의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올라갔지만 이달 임시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소수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기업특별법”이라고 반발하면서 공회전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업은 한국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다른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라 다른 글로벌 기업이 자국에서 받는 수준의 국가적 지원을 우리에게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국가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적극적이다. 일본은 최근 국적에 상관없이 일본에서 반도체를 10년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금액의 3분의 1을 보조하기로 했다. 미국 대만도 대규모 보조금 지원에 더해 투자 세액공제율을 상향했다. 또 다른 반도체 기업의 임원은 “조특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최대 25%다. 경쟁국의 다양한 지원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 아니다. 초를 다투는 첨단산업에서 그만큼 우리가 뒤로 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노란봉투법’은 소모적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여야나 정부가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이 강행되면서 갈등에 갈등만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부터 거론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유사와 은행을 겨냥한 ‘횡재세’ 입법 논의도 지루한 줄다리기를 예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미국에서 도입했는데, 단기 세수에 도움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투자 감소에 따른 산업경쟁력 저하라는 부작용을 드러내 폐지됐었다.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정치권이 마치 국민 삶과 괴리된 ‘갈라파고스’처럼 보인다고 꼬집는다. 주미대사를 지낸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는 “국회가 복합경제 위기에 직면한 국가 상황이나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 대표 산업을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놓고도 특정 기업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자욱 창원대 교수는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이 선진국으로 가는 기로에서 탈락한 이유는 정치 갈등과 부패 때문이었다”면서 “한국이 글로벌 경제위기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면 산업 관련 법이 정쟁 대상이 아니라 민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