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수출만이 능사가 아니다

입력 2023-02-23 04:08

정부가 발표한 김치 등 대미 농수산식품의 지난해 수출액은 16억 달러다. 그러나 ‘숨겨진’ 수출이 있다. 한 예로 CJ제일제당이 미국 현지에서 판 비비고 만두 단일제품의 매출액만 5억 달러에 육박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수출로 잡히지 않는다. 다른 식품의 미국 내 공장 매출까지 합하면 지난해 대미 농수산식품액은 정확한 수치를 알 방법이 없지만 정부가 실적으로 잡은 16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비단 식품 분야뿐만 아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680만대를 생산·판매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360만대는 해외 현지법인에서 제작돼 팔려나갔다. 삼성도 전체 휴대폰 생산량의 약 50%는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섬유산업이 주력인 효성 역시 지난해 매출액 20조원 중 80%인 16조원가량은 해외에서 판매가 이뤄진다.

이런 매출 역시 비비고 만두처럼 현 통관 기준 수출입 통계상 실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미국 현지법인에서 만들어져 미국인에게 팔린 제네시스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으로 잡힌다. 현 통계체계로는 국내에서 만들어져 관세를 물고 자국 국경을 넘어야 수출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방식이기도 하다. 수출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한국 기업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출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고 글로벌화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또 다른 통계를 보면 입증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는 통관 기준 지난해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역대 최대인 47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만 보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곧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상품수지 통계를 보면 기업의 글로벌화에 따른 효과가 포함돼 있다. 상품수지도 기본적으로 무역수지처럼 상품의 수출입 거래를 나타내지만 국내 기업이 해외 법인에서 상품을 생산하거나 구매해 현지나 제3국으로 수출하는 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 반영된다. 지난해 상품수지는 150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국내 기업이 해외 현지법인에서 벌어들인 배당수입은 45억 달러로 1년 전보다 70%가량 늘었다. 그 결과 상품 수출입을 포함해 서비스 교역, 해외투자 소득 등 모든 대외경제 실적을 나타낸 경상수지는 298억 달러 흑자를 보였다. 전년도(852억 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한은의 당초 전망치(250억 달러)를 웃돌았다.

이런 무역수지와 상품수지의 상반된 결과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도 겪고 있다. 일본의 상품수지는 2010년 이후 적자 내지 균형을 맞추고 있는 대신 해외투자 및 배당이자 소득이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글로벌화에 대한 반발 목소리도 있다. 국내 고용도 어려운데 해외에 공장을 지어 그 나라 좋은 일만 시킨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GDP의 30%를 책임진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부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리쇼어링(U턴)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경이 모호해진 글로벌 경제 현실에서 더 이상 기업의 해외 진출을 인위적으로 막을 방도는 없다. 좀 더 싼 노동력과 환율 변동 위험이 없는 해외로의 진출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의 체력은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져 해외로 나가는 수출보다는 해외에서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영토를 넓히느냐에 달려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외화를 해외에서 벌어들여 먹고사는 나라로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