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내일로 꼭 1년이 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이 전쟁에 관한 연설을 했다. 접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정반대 시각이 충돌했다. 바이든은 “러시아의 승리는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푸틴은 “러시아의 패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푸틴의 연설이었다. 비상식적 전쟁을 일으킨 독재자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디서 돌파구를 찾는가. 역시 비상식적인 독재정권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로선 눈여겨봐야 했다.
푸틴은 전쟁의 합리화에 그리 공을 들이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건 서방이고, 억제하려 한 건 우리였다”고 우겼을 뿐이다. “서방이 지역 분쟁을 세계 전쟁으로 확대하려 한다”면서 나치를 몰아내야 한다는 황당했던 개전 논리를 확장해 설파하며 모든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종전에 관한 구상은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년간 전쟁의 목표를 말한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인지, 동부지역 합병인지, 나토 가입 저지인지 아무도 종착점을 알지 못한다. 명분도, 목표도 불분명한 전쟁을 1년이나 끌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핵이 있다. 이날 1시간 반 넘게 계속된 그의 장광설에서 새로운 뉴스는 핵무기 통제조약 탈퇴를 선언한 것뿐이었다. 개전 초부터 수없이 핵을 언급해온 푸틴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전쟁의 돌파구도 핵에서 찾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을 가진 독재자의 무모함이 어떤 지경으로 치닫는지, 그것을 제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똑똑히 보여줬다. 북한의 김정은도 핵을 손에 쥐고 이 전쟁을 주시하고 있다. 푸틴이 만약 이 전쟁에서 전리품을 챙기는 성과를 얻는다면 한반도 안보 상황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선례가 될 것이다. 푸틴의 폭주를 막아서는 국제사회 대응에 동참하고, 그 과정에서 태동할 새로운 세계질서에 합류하는 일은 우리 국익과도 직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