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권력만 탐하는 하루살이 정치

입력 2023-02-23 04:05

20대 대선을 치른 지 일 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권력만 좇는 선거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이전부터 시작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국회는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연다. 민주당은 당대표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형편이다.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각종 민생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나 이를 챙길 여력이 없다.

국민의힘은 모든 관심사가 당대표 선출에 가 있다. 지난 연말 당대표 선출 방식에서 시작한 당내 분란은 후보 경선을 하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본선에 진출한 네 명 모두 자신이 내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는 후보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상대 후보의 과거 문제들을 들추면서 공격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국민과 민생은 외면한 채 권력만 탐하는 하루살이 정치에 빠져 있다. 민주당이 이재명 지키기에 생사를 거는 것은 그가 차기 대선 승리를 가져다줄 유력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다음 대선까지 ‘검사 독재정권’에 맞서 단일대오를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힘 역시 당대표 선택의 첫째 기준은 총선 승리다. 총선 승리를 통해 국회 권력을 장악할 때 비로소 정권교체를 완성한 것이라 본다.

국민 관심 또한 권력의 소재, 즉 누가 더 큰 권력을 잡을 것인가에 있다. 국민의힘이 그리고 민주당이 어떤 가치와 정책을 추구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다. 대선이 끝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공약이 없다. 만약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권력의 소재가 바뀌면서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그리고 민생이 어떻게 바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커진 권력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어떤 가치와 정책을 실현할 것인지, 무엇보다 국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가치와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지가 정치의 전부가 됐기 때문이다.

사회 갈등, 불평등, 저출생, 고령화, 지역 균형발전, 경제민주화, 기후위기, 신성장 동력 등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다 우리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이다.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5.94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36위에 위치한다.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못한 점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인데 어느 정치 세력도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누가 당권을 잡고 공천권을 행사할지, 그리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에만 있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이었다. 이념보다, 권력보다, 성장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철학과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때 사람은 권력자가 아닌 국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사람, 즉 국민이 우리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가. 모든 정치인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권력만을 탐하는 하루살이 정치를 하고 있다. 루소는 1762년 출판한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선거 때조차 자유로운 시민이 되지 못한다. 이제껏 대부분의 선거가 국민에게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강요했다. 지난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였다. 이런 상황에 놓인 유권자를 자유로운 시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만이라도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닌 가치와 정책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판단해야 한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일자리 감소와 소득 불평등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인구 감소와 초고령사회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위기는 어떻게 헤치고 갈 것인지.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내 삶의 질을 높일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 따져보자.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우리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