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중독자의 찬란한 데뷔 “내 글의 뿌리는 포스팅”

입력 2023-02-25 03:06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를 찾은 이미상 작가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소설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서영희 기자

이미상(41) 작가의 단편소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지난해 12월 제12회 문지문학상을 받았고, 이달 초 제14회 젊은작가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두 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작가들이 지난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또는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는데 이번처럼 같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중에 수상작을 선정한 젊은작가상 심사위원단은 이 점을 인식한 듯 “이미 비평계의 찬사를 두루 받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대상 선정을 주저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기세와 풍채를 자랑하는 작품이기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이 되었다”고 밝혔다.

압도적인 데뷔작

이미상은 “문지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젊은작가상은 기대도 못했다”면서 “너무 큰 영광이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한 번에 다 받으면 어떡하지, 큰 일 났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인터뷰를 위해 국민일보사를 찾은 이미상은 “신문사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인터뷰를 해본 것도 몇 번 안 된다”고 했다. 그는 2022년에 발견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상은 2018년 문학웹진 ‘비유’에 단편 ‘하긴’을 발표하며 문학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 작품이 2019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7편 중 하나로 뽑히긴 했지만 이미상이란 이름이 문학 독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그의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문학동네)이 출간된 후라고 할 수 있다. ‘하긴’ ‘모래 고모와…’ 등 단편 8편을 묶은 이 소설집이 강렬한 인상을 주며 이름조차 미스터리한 작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평론가들도 “근래 읽은 가장 불가사의한 소설집” “독보적으로 문제적인 소설” “이미상 소설이야말로 그간 내가 기다려온 소설”처럼 열띤 평을 내놓았다.

이미상은 “제 소설은 사회적 주제와 관련된 게 많다. 저는 주제가 더 먼저 들어온다”면서 “소설 한 편마다 이슈가 뚜렷한 편”이라고 말했다. ‘하긴’과 ‘그친구’는 86세대 이야기로 분류할 수 있고, ‘여자가 지하철 할 때’와 ‘모래 고모와…’는 여성 성폭력,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청소년 성 억압, ‘이중 작가 초롱’은 미투 운동 이후를 다룬다.

이미상은 동시대적 문제를 아주 낯설게 드러낸다. 이야기는 여러 겹이고, 해석은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다. 신랄한 단어들과 과감한 형식을 사용하고, 윤리적·정치적으로 예민한 질문을 배치한다.

이미상은 “주제와 관련된 익숙한 담론을 다 빼고, 흔히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기준이 있다”며 “그게 시작점”이라고 얘기했다. 예컨대, 86세대 담론에서 학벌주의 비판이 많은데 그는 문화자본 문제를 쓰는 식이다.

그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지만, 그 주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신 주제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섞어 놓는다. “콜라주 형식처럼 여러 층을 두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하다. 여러 관점을 동시에 한 소설에 담고 싶어 한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안 써진다. 저 스스로가 어떤 이슈를 그렇게 하나의 관점으로 보지 못 한다. 진실은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여성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경험하는 성폭력 공포를 묘사한 작품이다. 익숙한 주제지만 소설은 얼굴이 분리돼 각각 화자가 되는 환상적 수법, 연극적인 대사들, 어떤 모임에서 전개되는 평등과 안전에 대한 논쟁 등을 섞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로 구성해냈다.

“이 작품의 리얼리즘 버전도 있다. 그게 되게 얘기가 뻔하기도 하고,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청 많이 바꿨다. 이 얘기에 안전과 평등을 대비시키는 구도도 꼭 넣고 싶었다. 그래서 두 이야기를 한 작품에 끼워넣었다. 중요하고 익숙한 주제를 조금 다르게 얘기해보고 싶어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 이야기를 합치는 것이다.”

그는 또 “문장 하나에 문학적인 ‘느끼한’ 표현과 학술적인 용어, 상스러운 용어가 같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고 밝혔다. “한 가지 톤으로 쓰면 안정적이고 문학적인 느낌이 나긴 하지만, 이질적인 단어를 같이 썼을 때 오돌토돌한 질감이 생긴다. 말의 리듬이나 환기의 효과도 생기고. 그게 제가 만들고 싶은 스타일이다.”

그는 엄청 많이 쓰는 작가지만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다. 지난 5년간 1년에 두 편 정도의 단편을 발표했다. ‘뭐가 될 때까지 원고를 고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보기에 그동안 얘기되지 않았던 것, 새로운 발상이 들어가 있으면 그 때 이제 됐다, 그러면 됐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서른 넘어 소설 쓰기 시작

이미상은 서른이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소설 말고 다른 글을 썼다. “블로그에 열심히 썼다. 일기나 편지, 영화평, 서평 같은 글들을 밤새 써서 읽는 사람이 열 명도 안 되는 블로그에 올렸다. 글을 쓴 양은 적지 않았다. 매일 썼기 때문에.”

그는 글쓰기 중독자였다. “글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공들여 썼다. 청소년기부터는 거의 매일 글을 쓴 것 같다. 남들이 쓴 글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도 계속 글을 썼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소설은 픽션이고, 그래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야기를 지어내보면 어떨까. 제가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소설을 써보면 독자로서 소설을 더 재미있게, 더 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소설을 습작하고 문학창작 수업도 들으면서 이미상은 글쓰기의 다른 차원을 만나게 된 모양이다. “글을 대하는 진지함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저렇게 깊고 진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걸 처음 느꼈다”고 했다. 그 차이를 고민하면서 이미상은 글쓰기 애호가에서 작가로 변화했는지 모른다.

이미상은 소설을 습작하는 과정에서 제일 힘이 된 건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독자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자기 글을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두 명에 불과하더라도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진지한 독자가 있어야 한다. 제게는 그런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진 않았다고 한다. “저한테는 제 삶이 있다. 작가가 아닌 다른 삶이 있다. 글을 늘 끼고 살아왔지만 이걸로 직업을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일단 작가가 되는 건 너무 확률이 낮은 일이었다. 글 쓰는 게 좋으니까, 소설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계속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걸로 뭔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작가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면서 썼다.”

이미상은 “내 글의 뿌리는 문학이 아니라 ‘포스팅’인 듯 하다”고 얘기했다. “소설이 특별한 것이라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으면 저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소설을 쓰는 게 만만한 일로 여겨지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작가 미상’이라고 할 때 주로 사용되는 ‘미상’이란 단어를 필명으로 사용하는 것도 소설에 대한 어떤 태도를 표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신춘문예나 문학잡지를 통한 공식적인 등단 절차를 밟지 않았다. 문학웹진에 투고한 소설이 온라인으로 발표되며 데뷔를 한 셈이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에 수없이 응모했지만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이미상은 “사실 저는 등단을 했다고 말하고 다닌다”면서 크게 웃었다. 그의 소설집에는 “등단이라는 ‘말’을 탈취해 오기 전”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글을 쓰고 온라인을 통해 발표하는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등단’이라는 공식 제도가 이미 허물어졌다고 보는 것일까. 그는 “등단을 훨씬 넓은 범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면을 얻고 발표를 했다면 등단이라는 말이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탈취’라는 말의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소설집을 내고 중요한 문학상을 연거푸 받았지만 그는 해오던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직 안 해봤다. 생활을 위해서 일을 계속 해나갈 거다.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소설이나 등단에 그렇듯 문학상에도 그는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 쓰는 삶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처럼. 그는 올해 경장편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다. 주제는 저출생이다.

“국가가 저출생 시대를 맞이해서 출산장려를 위한 주택을 만든다. 거기 들어간 부부 이야기다. 입주하면 3년 안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 국가에 출산을 약속했지만 아이를 아직 낳지 않은 부부 이야기.”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