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찍은 기사식당도 등장… 식당도 기사도 ‘한숨’

입력 2023-02-22 00:03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 한산한 승강장 앞에서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한 기사식당의 메뉴판에는 군데군데 ‘8000원’이라고 적힌 종이가 덧대 붙어 있었다. 식당 주인 김진희(71)씨는 올해 들어 쇠고기뭇국, 코다리조림, 제육볶음 등 7000원이던 메뉴 18개 가격을 모두 1000원씩 올리면서 가격표를 함께 수정했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물가가 너무 올라 가게를 운영하기 버거웠는데, 단골 택시기사들에게 미안해 바로 올리지 못하고 6개월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택시·버스 운전기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도 즐겨 찾는 기사식당의 밥상 가격이 오르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가 장점인 기사식당도 재료비와 인건비, 공과금이 모두 오르는 ‘물가 삼중고’ 파고를 넘기 어려워 가격 인상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 끼에 1만원이 넘는 기사식당도 생겨났다.

약 30년 전부터 은평구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해온 이모(63)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씨는 “30년 만에 이런 자린고비 노릇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식당은 지난해 2월 메뉴 가격을 전부 1000원씩 올린 데 이어 다음 달 또 1000원씩 올릴 계획이다.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낙지 12㎏에 3만2000원이었는데 최근 6만7000원까지 올랐다”며 “요즘이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 공과금까지 오르면서 이달 수입은 지난달보다 60%나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 가격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식당들도 가격 인상 압박이 거센 상황이다. 마포구 망원동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6)씨는 최근 가격 1000원 인상 문제를 놓고 아내와 다퉜다고 했다. 청양고추와 배추, 무 등의 재료값이 크게 오르자 아내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김씨는 “손님이 줄어들 수 있으니 조금만 참아보자”며 아내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제일 잘 나가는 돼지불고기 백반(9000원) 메뉴는 팔아도 거의 적자”라며 “오죽하면 손님이 청양고추를 더 달라고 할 때 ‘다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고 씁쓸해 했다.

택시요금 인상에 맞춰 가격을 올린 식당도 있다. 한 기사식당 사장 조모(70)씨는 지난 1일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오르자 이에 맞춰 음식 가격을 1000원 올렸다. 조씨는 “식재료비가 하루가 가기 무섭게 매일 오르고 있다. (택시요금 인상이) 그나마 기회라고 보고 우리도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기사식당 단골손님인 기사들의 식비 부담도 커졌다. 개인택시 운전사인 노금환(79)씨는 “택시요금이 오르고 운행 시간을 늘렸지만 승객이 크게 줄어서 오히려 버는 돈은 적어졌다”며 “이런 상황에 기사식당 밥값을 포함해 오르지 않은 게 없어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 박모(62)씨는 “자주 가는 기사식당 가격이 전부 인상돼 점심 한 끼만 먹어도 한 달 식비가 5만원 이상 늘었다”고 했다.

택시기사뿐 아니라 기사식당을 찾던 일반 손님들도 ‘1만원 기사식당’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포구 연남동의 기사식당을 찾은 직장인 이재욱(42)씨는 “기사식당을 즐겨 찾았는데, 8년 전 6500원이던 불고기 백반 가격이 지금은 1만2000원이 됐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밥을 먹으러 오는 단골집이었는데 이제는 부담스러워서 다른 집을 찾아보려 한다”며 아쉬워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