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지난 19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아람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했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아들 정준씨와 결혼 했다. 이번 우승은 결혼 뒤 출전한 첫 대회 우승이자 작년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 이어 2경기 연속 우승이다.
리디아 고의 사우디 대회 우승은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LPGA 투어 ‘코리안 시스터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1988년 구옥희가 스텐더드 레지스터에서 첫 우승을 거둔 이후 35년간 총 181승을 합작했다. 작년을 제외한 최근 10년간 통계로 보면 한국은 세계 여자골프의 맹주였다. 특히 2015년, 2017년, 2019년에는 전체 투어의 절반 가까이인 15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지난해 6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전인지 이후 역대 최장 타이인 17개 대회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에 앞서 2013년 10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차러진 17개 대회서 무관에 그친 바 있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중심에서 변방으로 전락한 셈이다.
우선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게 원인이다. 수 년전만 해도 국내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앞다퉈 스스로 “골프를 하는 목표는 LPGA 투어 진출”이라고 했다. 특히 국내 1인자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고 태평양을 건넜다. 한 마디로 KLPGA 투어는 LPGA 투어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이 했던 것이다.
그랬던 시류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투어가 LPGA 투어 인기를 능가하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면서다.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LPGA 투어 진출을 꺼려하거나 가더라도 오랜 시간 고민을 하는 추세로 변한 것이다.
프로 데뷔 전부터 각광을 받았던 리디아 고에게도 기나긴 슬럼프 기간이 있었다. 2017년에 역대 최연소인 17세의 나이로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한 때 그의 추락은 끝이 없었다. 통산 19승 중 14승은 2018년 이전에 거뒀다. 2018년 1승에 그친 뒤 2019년과 2020년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2021년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서서히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작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 등 3승을 거둬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리디아 고는 더 나은 골프를 위해 자신의 이름만 제외하고 싹 다 바꿨다. 또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도 국내 선수들과 다르다. 그가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우리 선수들처럼 골프에 ‘올인’하기 보다는 골프를 ‘즐긴다’는 점이다.
결혼도 리디아 고의 골프가 만개한 이유 중 하나다. 반면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우리 선수 중 결혼한 선수는 박인비, 허미정, 박희영, 최운정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리디아 고는 사우디 대회 우승 직후 “남편의 외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LPGA 투어 한국 선수들은 23일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서 ‘17전18기’에 도전한다. 한국 선수들은 총 15명이 출전한다. 리디아 고도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우승에 도전한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