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더 아름답게 하라

입력 2023-02-22 03:03

옛날에 그림을 좋아하는 임금이 살았습니다. 임금은 나라에 방을 붙여 화가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내걸고 그림을 한 폭씩 그리게 했습니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작품이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임금은 그림을 그린 화가를 불러 함께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임금은 그림을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바라보다가 문득 화가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보시게. 당신 그림이 대단해. 그런데 저 구석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누구의 것인가.” 그러자 화가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임금이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놀랍게도 화가는 그림으로 들어가 걷고 있었습니다. 그림의 발자국은 화가의 발자국이었습니다. 화가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자 죽었던 그림이 살아 움직이게 됐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게 창조하신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림 밖에 계시지 않고 사람이 돼 세상 안에 오셔서 발자국을 남기며 걸으셨습니다. 그 발자국이 갈릴리와 유대와 여러 마을로 이어져 나중에는 십자가의 언덕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의 걸음은 지금도 고통당하거나 외롭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닿고 있습니다. 세상이 살 만한 곳이 되고 위로와 기쁨이 있는 이유는 주님이 세상 안에서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주님 없는 세상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도 세상을 아름답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은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마지막 날 이미 보시기에 좋은 세상에 사람이 더해지자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이미 아름다웠지만, 사람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했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보석처럼 소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사람이 아름다울까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가끔은 사람으로 인해 자연이 오히려 추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에는 사람이 있어서 아름다워지는 게 아니라 추해질 때가 많습니다. 가끔 사진 사이트에서 작가들이 올린 작품들을 감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풍경 사진은 자연만 있을 뿐 사람은 없습니다. 왜 작가들은 사람 없는 자연만을 담는 것일까요. 혹여 사람으로 인해 자연의 아름다움이 훼손될까 염려하는 것은 아닐까요.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면 자연도 사람을 닮아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이 죄로 인해 추해지다 보니 이젠 사람이 자연을 동경하게 됐습니다. 무수한 자연인들은 자연을 동경해 자연을 닮고 싶어하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이 존재할 때와 없을 때가 달라야 하겠지요. 그리스도인이 없는 사무실도 좋지만 거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더해질 때 더 좋아져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과 우리 주변 사회를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그 작품 안에 들어가 그림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추한 게 더해지면 아름다운 것도 함께 추해집니다.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하려면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연 이상으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사람들이 찍고 싶어 하는 풍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연을 찾아 들로 산으로 가듯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찾아 교회로 오면 좋겠습니다. 우리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소원합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