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0여개 대형 노조에 요구한 ‘회계 자료 제출’ 여부를 놓고 노정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는 자료 제출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를 넘어 아예 지원금을 중단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노동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만큼 강경 드라이브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양대 노총은 “월권행위”라고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대통령실에 보고한 ‘노조의 회계장부 공개 거부’ 대응책은 크게 과태료 부과, 세액공제 원점 재검토, 보조금 지원 중단으로 나뉜다. 고용부는 최근 회계 자료 제출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정조치를 하지 않으면 현장조사와 과태료 부과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 더해 더욱 강력한 노조 압박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양대 노총이 정부와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1520억5000만원이다. 고용부가 ‘합리적 노사관계 지원’을 명목으로 노동단체에 지원하는 금액만 따져도 매년 30억원을 넘어 실제 지원이 중단될 경우 노동계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지난해 고용부는 한국노총 소속 15개 단체의 21개 사업에는 29억2600만원, 민주노총 소속 13개 단체의 16개 사업에 3억3100만원을 지급했다. 고용부는 또 노조 활동 지원을 위해 노조 조합비 15%에 대해 세액을 공제하는 현행 제도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재정 관련 서류 비치·보존 의무 점검 결과를 제출한 노조는 327곳 중 120곳이다. 정부는 자율점검 결과서와 대상 서류의 표지·내지를 각 1장씩 내도록 했는데, 내지를 제출하지 않은 153곳도 ‘미제출’로 분류하고 있다. 정부 기준에 따르면 한국노총의 제출 비율은 38.7%, 민주노총의 제출비율은 24.6%다.
고용부 관계자는 “내지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사무실에서 직접 보여주는 등 여러 가지 소명 방법이 있다”며 “합리적인 수준으로 (비치 의무를) 용납할 수 있다면 과태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대 노총은 이미 회계자료를 보완하라는 정부 요구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노조 운영에 있어서 법 위반사항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노조 자료의 내지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현행 노조법상 고용부의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양대 노총은 산하 노조가 과태료를 부과받은 경우, 공동으로 과태료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에 대해서는 외부 회계감사를 연 2회 실시하고 자료를 노동부에 보고하고 있다”면서 “국고 지원과 회계자료 제출은 별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운영 결과와 사업 예산, 회계감사 결과를 공표하고 있다”며 “노조법 위반을 문제 삼으려면 불법 증거부터 제기하라”고 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