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히터 쓰면 3만원” 고시원의 눈물겨운 공고문

입력 2023-02-21 00:02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이모(58)씨는 최근 현관에 ‘스토브, 온풍기, 히터 등 전열기구 사용을 금지한다. 사용 시 월 3만원을 부과한다’는 공고문(사진)을 붙였다. 전기료, 가스비, 수도료 등 온갖 공공요금이 크게 올라 고시원 운영이 빠듯해진 탓이다. 매달 30만원 정도 나오던 고시원 전기료는 지난달 70만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안내문 부착 이후에도 추가 요금을 낸 입실자는 없었다.

이씨는 “세입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라 정부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을 받았을 텐데, 조금만 보태 달라고 해도 추가로 부담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방 1개당 24만~43만원의 월세를 받는데, 여기에는 전기료와 가스비, 수도료 등 공과금이 포함돼 있다. 공공요금 인상분은 고시원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상황이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전열기구 작동 여부를 점검한다고 했다. 세입자들이 몰래 전열기구를 사용하는 데다 외출할 때도 전원을 켜놓는 일이 허다해서다. 이씨는 가스비라도 아끼기 위해 그동안 30분 간격으로 20분간 틀던 보일러 가동 간격을 2시간으로 늘렸다.

세입자에게 공과금을 별도로 받지 않는 고시원 업주들은 겨울 동안만이라도 에너지를 아껴 써달라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중앙난방 온도를 임의로 계속 높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고시원 주인은 “구들장처럼 세게 보일러를 틀어야 잘 잤다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분들에게 아껴달라고 호소하면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지만 고시원 사정까지 신경을 쓰진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월세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이모(64)씨는 “세입자들의 뻔한 형편을 알다 보니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며 “방값을 올려도 다른 고시원으로 떠나버리면 오히려 손해니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시원뿐 아니라 많은 자영업자가 ‘폭탄 고지서’를 받아든 이후 공과금 절감을 위해 궁여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손님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난방비 등을 무작정 아낄 수도 없어 속앓이를 하는 상황이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헬스장에는 최근 샤워만 하러 찾아오는 이용자들이 늘었다. 점장 김모(32)씨는 “운동은 하지 않고 하루 세 번씩 씻으러 오는 회원도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이용료가 8만원인데 매일 5~6명 정도가 샤워만 하고 간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곳은 지난해 가스비와 전기료가 월평균 140만원 정도 부과됐지만, 지난달에는 2배 오른 280만원이 나왔다.

경기도 시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30)씨는 지난달 가스비와 전기료를 더해 610만원을 납부했다. 전달보다 130만원가량 오른 금액이다. 조리에 꼭 필요한 가스비 부담은 줄이기 어려워 전기료부터 아껴야 했다. 이씨는 아예 히터 리모컨을 매장 안에서 치우기로 했다. 그는 “‘작동하지 마시라’고 써놨지만 마음대로 리모컨을 가져가 온도를 올리는 손님들이 많다. 전기료가 너무 부담돼 아예 리모컨을 치웠다”고 말했다. 현재는 매장 내 히터 3개 중 1개만 쓰고 있다. 휴게 시간에는 남은 1개마저도 끈다. 이씨는 “그래도 손님이 춥다고 하면 1도라도 온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 황당하다”며 “영업시간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