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써라” 회사 간부가 반복 통보… 대법 “부당 해고”

입력 2023-02-21 04:02

회사 간부에게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듣고 출근하지 않은 직원을 회사가 방치했다면 묵시적으로 해고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2020년 1월 한 버스 회사에 입사한 A씨는 통근버스를 두 차례 무단 결행했다가 관리팀장으로부터 “사표 쓰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해고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관리팀장은 “응”이라며 버스 열쇠도 회수해 갔다. A씨는 이튿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3개월 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신청이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도 A씨가 해고당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관리팀장이 화를 내다 우발적으로 언급한 “사표 쓰라”는 표현만으로 근로계약이 종료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관리팀장에게는 해고 권한이 없고, 회사의 대표이사가 A씨에 대한 해고를 승인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관리팀장이 회사의 관리상무를 대동해 A씨에게 버스 열쇠 반납을 요구하고, 수차례 사표를 쓰라고 언급한 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고자 하는 의사 표시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회사는 A씨가 3개월이 넘도록 출근하지 않았는데 출근 독려를 하지 않다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직후에야 갑자기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 통보’를 했다”며 “관리팀장의 (사표 관련) 언행 당시 이미 회사 대표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했거나 적어도 추인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표 쓰라’는 발언에 관리상무가 관여한 정도, 관리상무가 해고에 대해 가지는 권한 등을 심리해 해고의 존재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