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지속가능한 육식에 대한 바람

입력 2023-02-21 04:08

점심시간이면 교실에선 도시락을 숨기고 뺏고 도망가는 난장판이 펼쳐졌다. 장조림, 햄, 소시지 같은 ‘고기반찬’을 싸 온 날은 어떻게든 먹는 게 지상 최대 과제였다. 아예 도시락 밥을 풀 때 밑에 숨기는 요령을 부리기도 했다. 집에서는 가족 중 한 명의 생일이나 돼야 밥상에서 고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하던 고기였는데, 어느 순간 쉽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일등공신은 공장식 축산이다. 고도화, 집적화로 ‘고기 공장’이 탄생하면서 한국인의 육류(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량은 폭발적으로 뛰었다. 1970년에 5.3㎏이었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1980년 11.3㎏, 1990년 19.9㎏, 2000년 31.9㎏, 2010년 46.9㎏, 2020년 54.6㎏으로 뜀뛰기 했다.

우리만 고기에 진심인 건 아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양질의 단백질(protein) 공급원인 고기에 집착한다. 단백질이 없으면 생명도 없어서다. 단백질은 탄수화물, 지방과 함께 3대 영양소다. 단백질은 인간 체중에서 약 16%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근육, 손발톱, 머리카락, 침, 피부, 효소(enzyme), 호르몬 등이 단백질로부터 만들어진다. 기억과 두뇌 연산에도 단백질이 필요하다. 면역 체계도 단백질을 필수로 한다. 인체의 대표적 에너지 생성장치인 ATP 펌프는 ‘ATP 합성효소’로 불리는 단백질이 있어야 작동한다. 외부에서 에너지원을 섭취하지 못할 때, 신체는 탄수화물과 지방을 연료로 쓴다. 이게 고갈되면 최후수단으로 단백질을 태운다. 쌀, 콩 등의 식물성 식품에도 단백질이 들어 있기는 하다. 다만 효율성이 떨어진다. 필수 아미노산 가운데 라이신, 메싸이오닌, 트립토판은 식물성 원료에서 구하기 어렵다.

이쯤이나 되니 고기를 끊는 건 사생결단에 가깝다. 하지만, 이게 공장식 축산의 부작용을 대속(代贖)할 수 없다. 윤리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환경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많은 양의 땅, 물, 먹이를 요구하는 축산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 삼림 벌채,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 농경지의 77%는 가축 방목지와 사료 생산을 위한 경작지로 쓰인다. 지구에 있는 담수의 70%가 고기 생산에 직간접으로 투입된다. 결정적으로 수많은 가축을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면서, 또한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인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불청객을 더 자주 만나게 됐다.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는 코로나19도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그래서 채식을 선택(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동시에 대체육(Alternative meat)도 각광을 받는다. 대체육은 식물성 원료를 이용해 만든 가짜고기, 동물의 근육세포 등을 배양해 얻는 배양육(cultured meat)으로 나뉜다. 특히 ‘실험실 고기’로 불리는 배양육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여겨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7월 “대체 단백질에 대한 투자가 녹색 시멘트 기술 투자보다 3배, 친환경 건물 투자보다 7배 더 많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아직 배양육 출현은 더디다. 생산단가 낮추기, 대량 생산체계 구축을 이뤄내야 하고 동물에서 혈청(배양액으로 쓰인다)을 뽑아내는 비윤리적 과정을 해결해야 한다. 실험실 고기라는 심리·사회적 장벽도 넘어야 한다. 그래도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 속도를 붙이는 건 위기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 미래를 그리는 과학기술, 과감한 자본투자다. ‘생각의 변화’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 1989년 발효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지구 대기권의 오존층을 다시 메우는 것처럼.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